결정적 증거 없으면 미온적 수사 태도에 경찰 신뢰 잃어
학폭 피해 숨진 학생 유족 수사와 별개 靑 국민청원 글 올려
차량 스토킹 사건 언론 보도 나가자 적극 수사 움직임
“이제는 경찰에 고소장 접수하는 것 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언론에 제보하는 게 먼저에요.”
최근 경찰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거나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이 수사 중인 사건에 연관된 시민들의 주장이다.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할 경우, 기존에는 고소나 신고를 거쳐 경찰 수사를 통해 해결을 모색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먼저 호소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이 경찰의 수사 태도가 수동적일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절차를 거친 사건보다는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받는 사건에 적극적이라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사권 조정이후 경찰에 접수되는 고소 사건이 늘면서 경찰이 애매하거나 결정적 증거가 없으면 미온적인 수사 태도를 보이면서 시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29일 학교폭력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A학생의 유족도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풀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이와 별개로 지난 7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글을 올렸다.
유족들에 따르면 애초 지난 7월 1일 새벽 2시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며 경찰을 방문, 아들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동영상 2개와 학교폭력을 호소하며 태블릿 PC에 남긴 유서 등을 직접 보여줬음에도 당직 경찰관은 “학교폭력 신고접수를 하고 싶다면,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니 추가적인 학생들 증언을 가지고 와라”고 얘기했다.
유족들은 당시 경찰의 태도를 보고 현재 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온전히 경찰 수사만을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고 얘기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됐지만 유족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고, 언론사에 제보도 했다.
유족은 “수사중이지만 최초 돌아가라고 했던 경찰에게만 아들의 억울함을 푸는데 기댈 수는 없어, 국민청원도 했고 언론사에 제보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폭력으로 인해 생을 마감한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유족들의 하소연은 13일이 지난 19일 현재 14만 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유족들은 청와대가 직접 답하는 요건인 청원 동의인 20만 명의 추천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올 초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부터 수백㎞의 차량 스토킹을 당한 여성도 두려움에 경찰을 찾았지만, 경찰은 “범죄 안된다”며 돌려보냈다. 이후 피해자는 국내 최대 중고차 사이트인 ‘보배드림’에 사연을 올리면서 각종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으며, 결국 해당 남성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로 다른 여죄까지 밝혀져 구속됐다.
이에 앞서 지난 6월 자신이 근무했던 광주시 북구의 한 병원에서 허위·과잉 진료가 이뤄지고 직원이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발한 의사 B씨 역시, “언론보도 나가고, 국민청원 올리니까 제대로 수사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B씨는 “최초 보험회사 관계자와 경찰을 찾았지만 증거가 부족하니 돌아가라고 하고, 성추행은 다른 곳에 신고하라는 답변을 받고 돌아왔다”며 “하지만 이튿날 언론보도가 나오자 경찰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B씨 역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글을 게시했다. 수사가 진행 중이었지만 국민청원으로 인해 또다시 수사 담당자가 적극성을 띄었다는 게 B씨의 얘기다.
일선 수사부서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은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수사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 부서에서 20여년 근무한 지역의 한 경찰관은 “경찰들도 사람이다 보니 사소한 사건은 피해자를 설득해 사건화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청와대 청원글과 국민신문고, 언론보도를 통해 담당하는 사건이 알려지면 부담을 느끼고 좀 더 신경 쓰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기우식 참여자치21 사무처장은 “경찰은 언론에 해당 사례가 보도돼야만 움직일 때가 많다”며 “물론 경찰들도 수사에 대한 매뉴얼과 원칙이 있을 것이지만 합리적인 문제 제기가 있을 때는 검토하고, 이 같은 논란에 대한 처리방식을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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