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성천기자

진혜진 시인 “타인들을 위한 따스한 말건넴의 순간”

by 광주일보 2021. 7. 20.
728x90
반응형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포도에서 만납시다’ 발간
문예지 ‘상상인’ 발간도… “손끝에서 태어난 책, 사랑 받았으면”

 

대개의 경우 문단에 등단하고 첫 작품을 발간하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린다. 등단 전에 습작을 많이 했던 이들은 곧바로 창작집을 엮기도 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작품의 완결성을 위해 출간을 미룬다.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권의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는다는 것은 무엇에 비할 바 없는 ‘떨림’이자 ‘사건’이다.

진혜진 시인. 2016 광주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 등단 5년 만에 첫 시집 ‘포도에서 만납시다’(상상인)를 펴냈다.

5년이라는 시간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물리적인 경계였을지 모른다. 문학사가 10년을 주기로 사조나 트렌드가 바뀌거나 정리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5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이상을 넘어버리면 자칫 작품이 진부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써놓은 시가 더 자유를 잃기 전에 더 숙련된 작업을 위해 첫 시집을 강물에 띄운다”는 다소 시적인 표현으로 발간 소식을 전해왔다. 그러면서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도 한계이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을 하는 것도 한계”라는 생각에서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고 한다.

 

이번 창작집은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를 받았다. 무엇보다 시인은 자신이 대표로 있는 도서출판 ‘상상인’에서 작품집을 펴내게 된 데 대해 의미를 부여한다.(시인은 문예지 ‘상상인’ 대표도 맡고 있다) 코로나로 모든 분야가 어렵지만 출판계 또한 독서시장 위축으로 만만치 않다. 문예지, 문학 전문지를 발간하기는 더더욱 어렵지만 그는 문학은 모든 예술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장르라는 ‘사명 같은 생각’으로 일을 이어가고 있다.

 

“출판사 일을 하다 보니 제 손끝에서 다른 분들의 소중한 책들이 한 권, 한 권 태어납니다. 발간되는 책들이 저마다 가치와 생명력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책이 두 발로 세상을 잘 돌아다닐 수 있고 독자의 품에서 사랑받기를 염원하며 출판 일을 하고 있어요.”

 

진혜진 시인

 지금까지 보아온 진 시인은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이타적이다. 이번 창작집의 전체적인 주제랄까, 작품 이면에 흐르는 정조는 ‘사랑’으로 수렴된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추천사에서 “진혜진의 첫 시집은 ‘사랑’의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사랑’을 상상하고 실천하고 꿈으로 각인해가는 불가항력의 과정을 담은 격정적 고백록”이라고 평했다. 아마도 시인이 지닌 따뜻한 성정은 “뭇 타자들을 향한 따스한 말건넴의 아득한 순간”과도 접맥되는 부분일 게다.

“포도에서 만납시다/ 머리와 어깨를 맞댄/ 돌담을 돌면 포도밭이 있다/ 우리의 간격은 포도송이로 옮겨가고/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처럼/ 지지대를 타고 몸을 쌓는다/ 씨를 품는다/ 우리는 서로 기댄 채 손끝이 뜨거워지고/ 포도는 오래 매달릴수록 그늘의 맛이 깊어진다…”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통화음이 길어질 때’는 발상과 화술적인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다. “만남과 헤어짐이라는 진부한 사건이 포도의 이미지로 생기를 얻는 장면들이 아름다웠다”는 신형철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심사평에서 보듯, 시인의 오랜 습작과 내공이 응결된 작품이다.

시인이 작품의 첫 행 ‘포도에서 만납시다’를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던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바로 어머니와의 이별 때문이다. 등단 일 년 전, 사랑하는 어머니가 하늘로 떠나는 슬픔을 겪었다. 그는 “슬픔은 야채처럼 솎아낼 수도, 풀처럼 뿌리 채 뽑아버릴 수도 없었다”며 “그 그리움을 멈출 수 없어 끝내 우리 ‘포도에서 만납시다’라는 문장으로 약속을 대신했다”고 말했다.

어쩌면 그의 시는 본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 ‘실존적 비애나 결핍의 장막’을 자신만의 언어로 승화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사람의 생로병사처럼 우주도 그러한 하나의 세계가 이루어지고 머물다, 서서히 무너지고 본래로 돌아가는 그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 불가설을 어떻게 시로 표현할 것인지가 화두였어요. 보다 본래적이고 삶의 통찰을 통한 사유의 깊이를 추구하고자 했지요. 나아가 개인들이 가진 다층적인 목소리와 미묘한 관계성을 시적 미학으로 풀어내고 싶었구요.”

출판 일을 하고 시를 쓰는 틈틈이 시인은 경희사이버대 문창과에 편입해 학교를 마쳤다. 이론적으로 문학을 더 공부하고 싶었다. 아동문학에서부터 시, 소설, 비평, 철학, 동서양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했던 게 창작에 도움이 됐다.

앞으로도 그는 창작과 출판사, 문예지 관련 일 모두 최선을 다하고 싶다. 매일의 새벽은 그에게 “빛과 어둠과 제가 만나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삼자대면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시란 혼자서도 소용돌이가 되는 바람이며 태풍이기도 합니다. 문장에게 지은 죄로 ‘자신 속에 수감된 죄수’이기도 하지요. 스스로 용서하고 용서받는 자유이기도 하구요.”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한·중 예술교류전 ‘기억과 유대’

중국 항일정신의 의지가 집결된 중국 충칭(重慶)은 대한민국의 항일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도시로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백범 김구 선생과 애국지사들이 해방직전까지 체류하며 항일의지

kwangju.co.kr

 

고려고 교사 이삼남 시인, ‘너와 떡볶이’ 출간

오늘의 고등학교 교실은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숨 돌릴 틈이 없다. 특히 고3이라는 시간은 인생에 있어 가장 힘들고 여유가 없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럴 때가 “꽃봉우리 속에 담긴 꽃의 시

kwangju.co.kr

 

‘바티칸 박물관’으로 떠나는 아트투어

‘해설과 함께 떠나는 세계 박물관 기행.’광주시립미술관(관장 전승보)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인 ‘그림 읽어주는 남자의 미술기행’은 다양한 주제로 큰 인기를 모았다. 강사로 나선 이창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