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죽음’ 지난 1일 새벽 신고…광산경찰 미온적인 대응에 허탈
고민하던 유족 다시 112에 신고…동영상 토대 5명 가해 혐의 수사
경찰이 극단적 선택을 한 고교생〈광주일보 7월 5일 6면〉아들의 학교폭력 피해 동영상과 유서를 들고 찾아온 아버지에게 “증거를 더 가져오라”며 돌려보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학교폭력 피해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사건 처리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경찰의 더딘 수사로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메신저 대화목록 등이 삭제된 것을 비롯해 증거로 삼을만한 자료가 삭제되고 있는데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8일 광주광산경찰과 피해학생 가족 등에 따르면 가족들은 고교생 아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견디다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뒤인 지난 1일 새벽 2시께 ‘억울한 죽음을 풀어달라’며 경찰을 찾았다.
피해 학생의 부친 등 유족들은 당시 당직근무 중이던 경찰에게 ‘아들 죽음이 학교폭력과 관련 있다’며 수사를 요청했다. 유족들은 특히 경찰에게 아들이 살아있을 때 또래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동영상 2개와 학교폭력을 호소하며 태블릿 PC에 남긴 유서 등을 직접 보여줬다.
경찰은 그러나 증거자료를 보고도 “학교폭력 신고접수를 하고 싶다면, 지금 상태로는 부족하니 추가적인 학생들 증언 가지고 와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는 게 피해 학생 가족들 설명이다.
유족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을 것으로는 생각조차 못하고 장례를 치르던 중, 발인을 하루 앞두고 아들의 괴롭힘 동영상을 건네받고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장례 절차를 중단하고 경찰서를 찾았는데, 경찰이 “증거가 부족하니 더 가져와라”며 돌려보냈다는 얘기다.
유족들은 다시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오전 7시 30분께 112로 신고했다. 112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광산경찰 소속 우산지구대 경찰관이 유족에게 진술서를 받아갔고, 이후 사건이 담당 부서에 배당돼 현재 수사로 이어졌다.
피해학생 가족들은 “경찰이 증거가 부족하다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누가 이런 경험을 해봤겠나”라며 “장례식장으로 돌아와 경찰이 하라는대로 어디에서 어떻게, 어떤 증거를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유족들은 경찰이 당시 상황을 부인한다면 반박할 자료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당시 112 신고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추가로 증언해줄 증인, 증거를 찾아다니고 있지 않겠냐고 하소연했다.
박고형준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활동가는 “야간업무의 특성상 정식 접수가 어려우니 반려가 아닌 지도행위를 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경찰서 방문이 두렵고, 법률적 상식이 수사기관에 비해 얕은 시민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 중 한명은 전수조사 당시에도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고, 증거가 될 만한 SNS 상의 기록들을 지우고 있어 경찰이 가해자 조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광산경찰 관계자는 이와관련, “당직 경찰이 당시 새벽에 유족과 만난 것은 맞지만 ‘지금 경황이 없을테니 정리가 된 뒤 정식으로 고소장을 접수하라’고 안내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유족들이 내보인 동영상과 유서를 보고 어떤 경찰관이 그냥 돌려보냈겠냐”고 부인했다.
한편, 광주광산경찰은 학교폭력 피해 사건과 관련, 유족이 제출한 동영상 등을 통해 또래 학생을 5명에 대해 가해 혐의가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중이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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