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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살고 싶은 이야기가 담긴 집] 요리와 사람 좋아하는 부부에겐 ‘주방’이 중심

by 광주일보 2021.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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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수완지구 안톤 숄츠·정유진 부부 주택 <7> 
독일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설계만 2년…가족에 맞는 집
울타리 없는 개방된 2층 주택·간결한 외관 여러개 창문 특징
세계여행하며 수집한 소품들 집안 곳곳 장식, 인테리어 눈길

‘집’이 누군가의 ‘삶의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집이야말로 그 명제에 충실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이 집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가족의 ‘생활’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들의 삶의 중심에 요리와 여행이 있다는 사실을. 독일 함부르크 출신인 안톤 숄츠·정유진 부부, 그리고 초등학생 아들 지노가 함께하는 집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다. 

광주 수완지구 단독주택 단지 성덕마을에 자리한 안톤씨 부부의 2층 집은 첫 인상부터 여느 집과 좀 다르다. 단독주택들이 그렇듯 독특한 외양도 눈에 띄지만, 무엇보다 차 두 대가 들어가는 주차장과 이어진 작은 정원이 개방돼 있다는 점이다. 요즘같은 시절에 의외다 싶은데, 설계 당시 울타리가 없는 오픈 컨셉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릴 때부터 독일 우리집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래서 무언가로 막혀 있는 게 싫었다. 새로 짓는 집 역시 개방감을 주고 싶었다”는 게 안톤씨의 이야기다.

2층 규모(대지 면적 363.90㎥ 연면적 235.97㎥)의 주택은 설계에만 2년 가까이 걸렸다. 빨리 짓는 것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 가족이 원하는 집을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독일에는 이런 말이 전해진다고 한다. 독일 남자가 살면서 해야할 일 중에 중요한 게 나무를 심고, 집을 짓는 것이라는. 독일 남자 안톤씨도 가족을 위해 첫 집을 지었고, 이 집을 위해 나무를 심었다. 길고 긴 ‘궁리의 시간’이 있었고, 시공 때도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며 집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

건물 외관은 최대한 간결하게 구성했다. 하얀색 외벽에 건물 아랫 부분을 나무로 마감한 게 특징이다. 집에 창문을 많이 내고, 가족들이 수시로 오고 가는 집안 나무 바닥에 공을 들였다.

집 안 곳곳에 놓인 꽃과 화분.

1층에 들어서면 이 집의 주인공이 ‘주방’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여느 집처럼 소파가 거실의 중심에 있지 않고, 1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주방과 대형 탁자다. 두 사람은 요리를 좋아하고,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 하는  걸 즐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는 언제나 즐겁고 마음 맞는 사람들을 초청해 함께 시간을 나누는 게 소중한 그들에게 ‘부엌’이 핵심적인 공간이 됨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요리하는 걸 좋아하셨어요. 주말이면 거의 주방에서 사셨죠. 저 역시 요리하는 걸 좋아합니다. 와이프도 마찬가지구요. 정말 마음에 드는 아름다운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어 먹는 일은 작은 행복입니다. 해외에 나가는 일이 많은데 그 때마다 요리 재료나 양념같은 것도 듬뿍 사오죠. 새로운 요리, 글로벌 요리를 하는 거죠. 그날의 느낌을 담아 요리하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1층에는 욕실과 함께 손님방을 두었다. 보통 1층에 손님방을 마련하는 경우가 드문데 이들은 2층이 온전히 가족들만을 위한 프라이비트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처럼 배치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큰 창을 내 푸른하늘이 자연스레 보이도록 했다.  2층에는 욕실과 드레스룸이 딸린 부부침실, 작은 다락을 갖춘 아들 지노의 방, 부부 각자의 작업실이 자리하고 있다. 방들을 잇는 작은 복도는 1인용 소파, 탁자와 함께 커다란 화분, 한국 고가구, 그림 등이 어우러져 마치 작은 갤러리 같다. 

집을 둘러보고 나면 집안 곳곳을 장식한 소품들과 인테리어에 자연스레 눈길이 간다. 무엇보다 이국적 취향이 물씬 풍기는 장식물들이 인상적이다. 카페에나 있을 법한 대형 나무 말 조각상이 거실에 자리잡고 있고, 부부의 침실에는 석불상이 놓여 있다. 스스로 ‘여행중독자’라 칭하는 부부는 수집하고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코로나로 외국 여행이 불가능하지만 고향인 독일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특히 티벳, 인도 등 오지를 좋아해 그 곳에 얽힌 추억도 많고,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하는 소품들을 많이 구입했다.   

흰색으로 외관을 마무리한 집은 주차장과 연결된 정원이 오픈돼 있다.

20여년전, 교환학생으로 처음 한국과 인연을 맺은 안톤 씨는 조선대에 근무하게 된 게 인연이 돼 광주에 정착했고 지금은 독일 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광주비엔날레에서 근무했던 정 씨는 오랫동안 쿤스트라운지와 쿤스트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고 지금은 문화컨설턴트로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활동중이다.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는 터라 집에는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작품도 눈에 띈다. 

“주택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들 하죠. 물론 할 일이 많기는 하지만 얻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인데 독일과는 다르게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하는 것 같아요. 조금 수고스럽고 불편해도 그런 과정에서 얻는 게 있는데 그걸 외면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주택에서 살면 계절의 변화를 다 느낄 수 있죠. 자연과 가까이 하면  마음이 싱싱해집니다.”

자연은 ‘집 안’으로도 쑥 들어와 있다. 탁자 위, 계단 모퉁이, 조리대 위 등 곳곳엔 아름다운 꽃과 화분들이 가득해 집안 분위기를 환하게 만든다. 원형 거울 앞에 꽃병을 놓아 거울에 반사된 꽃이 더욱 풍성하게 보이는 점도 인테리어 포인트다. 백일홍, 단풍나무 등 정원과 집 주변에 심은 나무들은 안톤 씨가 여러 곳을 방문해 고르고 심은 것들이다. 집을 완성하기 1년반 전에 마음에 드는 나무를 찜해두고  주인에게  “잘 키워달라”는 부탁을 했던 나무들이다. 

“집은 트렌드를 좇아 짓는 게 아니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스토리가 담겨야 하는 공간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야하는 거죠. 집도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게 보이고 쓰는 사람들의 습관이 보이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성적이고, 삶의 스타일과 습관을 반영하는 집 말이죠.”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서 안톤 씨가 내어주는 특제 칵테일로 시작한 이날의 취재는 오랫동안 꿈꾸었던 가족을 위한 집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완성해 나간 이야기를 듣는 즐거운 경험이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집’을 찾습니다. 독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신 분은 이메일(mekim@kwangju.co.kr) 로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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