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로 영·호남 한 마음’ 대구 다온폰트 황승현 기획국장
‘투사회보’ 박용준 글씨 등 컴퓨터 폰트로 되살려 무료 배포
“선열 위해 할 수 있는 최선…호남 넘어 더 많은 열사 다룰 것”
화순 출신 이한열 열사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투사회보’를 썼던 박용준 열사까지, 그 혼이 깃든 글씨체를 컴퓨터 폰트(서체)로 옮겨 열사들을 기리고 나아가 영·호남 화합까지 이끄는 이들이 있다.
대구 디자인 폰트 업체 ‘다온폰트’(대표 황석현)는 최근 이 열사의 글씨를 컴퓨터 서체로 되살렸다. 이 열사가 남긴 시, 일기, 편지, 독서록 등 육필 자료를 바탕으로 ‘이한열체’를 만든 것이다.
지난 5월에는 광주로,광주YWCA,들불열사기념사업회와 협업해 5·18 투사회보에 남은 박 열사의 육필을 토대로 ‘박용준 투사회보체’를 제작했다. 투사회보는 5·18 당시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 왜곡된 언론보도만 접해야 했던 광주 시민들에게 정확한 소식을 전해준 시민 신문이었다. 박 열사는 노동야학인 ‘들불야학’ 일원으로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가 쓴 초안을 철필로 등사지에 옮겨 적었다.
황승현 다온폰트 기획국장은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을 무릅쓴 선열들의 뜻이 사람들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제작 소회를 밝혔다.
“선열들의 글씨체를 컴퓨터로 옮기는 건 늘 하고 싶던 일이었습니다. 선열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컴퓨터 서체는 한 번 만들어지면 전국민 누구나 쓸 수 있고, 오랫동안 사용하며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이한열체는 지난 9일 이한열 열사 34주기를 맞아 무료 공개·배포됐으며, 박용준 투사회보체 또한 무료로 내려받아 사용할 수 있다. 다온폰트는 윤동주, 김구, 안중근, 한용운,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의 육필도 컴퓨터 서체로 재탄생시켜 무료 배포하고 있다. 서체는 다온폰트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컴퓨터 서체를 제작하는 건 보기보다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한글 초·중·종성을 조합하면 1만개가 넘는 글자가 나오는데, 이 중 필수로 제작해야 하는 표준 글자만 2350자다. 여기에 외래어를 표기하기 위한 추가 글자 224자를 추가로 만들어야 서체 1개가 완성된다.
황 국장은 “육필을 컴퓨터 서체로 바꾸는 건 과정이 더 복잡하다. 이미 돌아가신 분들은 구할 수 있는 자료가 한정돼 있으니 더 어렵다”며 “1개 서체에 필체를 오롯이 담아내고자 전 직원이 육필 자료를 수백, 수천장 손으로 베껴 썼다. 필체가 손에 묻어날 때까지 끝없이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은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
다온폰트는 제작비를 자체 부담하고, 무료로 배포해 수익을 낼 수도 없으면서도 선열들의 서체를 옮기는 일에 힘을 쏟았다. 이에 관해 황 국장은 “관심이 있고, 잘 한다고 자신하는 일이니까 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이어 “처음엔 영·호남 화합까진 미처 생각치 못했는데, 자연스럽게 호남 열사들도 많이 다루게 됐다”며 “지역을 뛰어넘어 더 많은 선열들의 글씨체를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꼭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무거운 마음으로 서체를 쓸 필요는 없습니다. 가령 ‘이한열체’는 편지글을 바탕으로 했던 만큼 굉장히 예쁜 글씨체예요. 편견 없이 마음껏 쓰시고, 서로 공유하면서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이따금씩 선열들을 기억해 주시고, 알아 주시기만 한다면 감사합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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