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비밀이 없다는 것은 재산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허전한 일이다”라고 말했던 시인 이상은 27년의 짧은 생애와 개성 있는 작품, 연애사 등이 어우러지며 그 어떤 예술가보다 궁금증을 자아내는 작가다. 그런 이상의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해낸 건 절친 화가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상’일 것이다. 이상의 꿈은 원래 화가였다. 1931년 조선미전에 ‘자화상’을 출품해 입선하기도 했던 그는 실험성이 돋보이는 대표작 ‘날개’의 드로잉 작품을 직접 그렸고,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삽화를 ‘하융’이라는 필명으로 그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 경성을 중심으로 화가와 문인들이 우정과 교류와 연대를 통해 만들어간 ‘시대의 풍경’은 한국 근현대 문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시인과 문인은 서로의 예술적 교감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작품에 반영시켰고 그 결과물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전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이 펴낸 ‘시인과 화가-한국 문단과 화단, 그 뜨거운 이야기’는 문인들과 화가들의 만남의 기록이다. 저자는 “시는 그림이요, 그림은 곧 시다. 시인과 화가는 바늘과 실의 관계였고 형제 같았다. 1920~30년대 서울은 문학과 미술이 한 가족이 되어 동고동락했다”고 말하며 그 시대의 풍경을 풍성한 자료 조사 등을 통해 복원해냈다.
잡지 ‘인간과 문학’에 실렸던 글들을 묶어 펴낸 책은 이상과 구본웅, 김용준과 김환기, 최승구와 나혜석, 구상과 이중섭, 박완서와 박수근, 김지하와 오윤에 이르는 다양한 예술가를 소개한다.
‘시인들이 사랑한 시인’ 백석과 채만식의 ‘탁류’, 이광수의 ‘사랑’ 등 수많은 책의 표지를 그렸던 화가 정현웅의 만남은 숱한 사연을 품고 있다. 두 사람은 잡지사 편집자와 화백으로 옆자리에서 근무했고, 잡지 ‘여성’에 실린 백석의 대표작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그림을 그린 이가 정현웅이었다. 백석은 ‘북방에서-정현웅에게’라는 시를 쓸 정도로 그와의 우정을 애틋히 여겼다. 무엇보다 각기 다른 시기에 월북해 북한에서 조우한 후 아동문학 ‘집게네 네 형제’의 표지화와 작가 초상으로 다시 인연을 이어갔다.
김환기는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과 재혼했다. 고희동의 주례에 사회는 정지용과 길진섭이었다.
이상의 아내 변동림과 재혼했던 김환기 역시 문인과의 교류가 깊었다. ‘유화 붓을 든 문인화가’였던 그는 ‘현대문학’ 등 잡지를 비롯해 서정주·조병화·황순원의 소설 표지화를 그렸고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영감을 받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그밖에 화가 이중섭이 ‘시인 구상의 가족’이라는 그림을 남길 정도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작가 구상은 일본인 아내와의 이별, 정신질환 등으로 힘든 삶을 살았던 이중섭의 예술혼을 지켜준 든든한 친구였다.
<다할미디어·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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