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 전통, 현대미술을 만나다

7월18일까지 ‘산을 등지고…’개관전…2만여명 다녀가
허백련·허건·세오·이이남 등 13명 작품… 佛 작가 ‘로랑 그라소’전 눈길

지난 3월 광양에 문을 연 전남도립미술관 내부 모습.

지금, 광양에 자리한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을 방문하면 즐거움이 두 배다. 독특한 건물 외관 등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 재미와 오랫동안 준비한 ‘개관 기념전’을 통해 다채로운 근현대 미술의 현장을 조우할 수 있다.

414억원이 투입된 전남도립미술관은 옛 광양역사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사통팔달 기차역에 자리한 터라 접근성이 좋고 탁 트인 공간이 인상적이다. 미술관 앞에는 오래된 창고를 개조한 ‘광양예술창고’가 자리하고 있고 아트 벤치 등이 놓인 산책로도 조성돼 있어 한가로이 거닐기도 좋다.

‘전남의 풍경을 담다’라는 컨셉으로 설계작업이 진행된 미술관은 전면을 유리로 감싼 독특한 외관이 눈에 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무가 그대로 반사돼 보이는 유리창으로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모습이 자리할 터다.

 

1만 7598㎡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인 미술관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도립미술관은 9개의 전시실을 모두 한 층에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지하 1층에 자리한 전시실들은 특히 층고가 6m에 달해 인상적으로, 이번 개관전에서 선보이는 대형 작품들에 안성맞춤이다.

오는 7월18일까지 열리는 개관특별기획전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전은 현대와 미래의 미술이 전통미술과 어떤 상호관계성을 갖고 작품으로 해석되는 지 들여다본 전시로, 지금까지 2만여명이 다녀갔다.

3개국 13명 작가의 작품을 만나는 개관전은 남도미술의 뿌리를 찾는 ‘의재와 남농:거장의 길’, ‘현대와 전통, 가로지르다’, ‘로랑 그라소:미래가 된 역사’ 등 세 개의 전시로 구성돼 있다.

김선두 작가의 ‘느린 풍경-별 헤는 밤’(왼쪽)과 세오 작가의 ‘나의 집에 낯선 나’ 연작.

전시장에 들어서면 남도 전통 회화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의 작품들을 가장 먼저 만난다. 기획전의 프롤로그 성격인 이 공간은 두 사람의 대표작을 통해 거장의 숨결을 느끼고 현대미술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보는 기획으로 꽃과 새가 주제인 허백련의 8폭 짜리 ‘팔곡화조병풍’, 허건의 ‘삼송도’ 등과 두 사람이 사용했던 물품들도 만날 수 있다.

산수화와 수묵화로 상징되는 전통을 한국화, 미디어아트, 설치 등 현대 언어로 재해석한 현장을 만나는 현대작가 10인전은 의재의 장손 허달재 작가의 ‘홍매’, ‘백매’ 작품으로 시작한다. 또 남농의 장손인 허진 작가의 ‘익명인간’, ‘유목인간’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이 섹션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회화의 강렬한 멋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광주 출신으로 독일에서 주목받고 있는 세오의 신작 ‘ 나의 집에 낯선 나’ 시리즈는 강렬한 색감과 과감한 구성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암 출신 조병연 작가의 ‘월출산 전도’는 10ｍ가 넘는 대작으로 담백한 전통수묵화의 매력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져 감동을 전한다. 그밖에 김진란 작가와 독일 미디어 설치작가 바루흐 고틀립이 협업한 작품은 전통한옥을 재해석한 공간 구성과 단청 문양 이미지, 국악연주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전한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의 대형 신작 ‘역전된 산수’는 의재 허백련의 ‘산수팔곡병풍’을 모티브로 한 작품으로 영상 속 산수화와 물 속에 투영된 산수화를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또 황현기 작가는 의재의 ‘목단화운근’을 차용해 실리콘으로 작업한 작품을 선보이며 장승과 탈을 소재로 작업하는 장창익은 미술관이 ‘발견’한 작가다.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의 영상과 설치 작품

해외 전시로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로랑 그라소(1973~)전을 마련했다. 2008년 마르셸 뒤샹상을 수상한 로랑 그라소는 전통과 현대, 미래를 관통하는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3개의 전시공간을 폭넓게 활용한 이번 전시에서는 윤두서의 ‘말 탄 사람’과 정선의 ‘금강내산총도’를 재해석한 신작 ‘과거를 연구하다’ 시리즈를 비롯해 총 34점을 선보인다.

흥미로운 건 다양한 주제로 작업한 영상과 설치 작품들이다. 호주 원주민 유적지와 주변의 협곡, 호수 등을 촬영한 ‘오토’, 캐나다 퀘벡주에서 600만명이 9시간 동안 암흑 속에 있었던 현상을 연구해 태양의 힘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태양풍’,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이후의 식물 변형 등 식물의 돌연변이 현상을 바탕으로 제작한 설치미술 ‘돌연변이 꽃’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이다.
그밖에 썬큰 가든이 조성된 야외전시장에서는 세계적인 작가 줄리안 오피와 자비에 베이앙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지호 관장은 “전통에서 출발해 동시대 현대미술을 보여주는 장(場)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개관전을 준비했다”며 “무엇보다 대작을 통해 ‘회화의 맛’을 만끽할 수 있는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남도립미술관은 개관전에 이어 최근 기증받은 ‘이건희 컬렉션’ 21점을 오는 9월 공개한다. 기증작에는 김환기, 천경자, 오지호 화백 등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글·사진=광양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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