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현실 세계에서는 실패했지만 사후에 성공한 대표적 인물이다. 천하를 주유하면서 자신을 써 달라고 했지만 어느 군주도 공자를 쓰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공자는 모든 제후국들이 주(周) 왕실을 섬기면 평화시대가 온다고 주장했는데, 공자를 만난 군주들은 자국의 패권강화에 관심이 있었지 주 왕실의 제후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처럼 현실에서 실패한 공자가 사후에 성인(聖人)으로 추대된 이유는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공자님 말씀’은 시대가 변해도 통용되는 진리였다.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이 복종합니까?” 공자가 답했다.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굽은 사람들을 버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만, 굽은 사람을 등용하고 모든 곧은 사람들을 버리면 백성들이 복종하지 않습니다.”(‘논어’ 위정)
다산 정약용은 ‘원’(原)이란 제목의 글을 썼는데, 원(原)은 원리를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 중 하나가 ‘원정’(原政)으로서, 정치의 원리를 생각한다는 글이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왜 누구는 어리석은데도 높은 자리를 차지해서 악을 전파하고 있고, 왜 누구는 현명한데도 아랫자리에 굽혀 있어서 그 덕이 가려 있어야 하는가? 그래서 붕당(朋黨)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넓혀서 현명한 이를 진출시키고 불초한 자를 쫓아내서 바로잡는 것이니 이것이 정치다.”(정약용, ‘원정’)
공자나 다산이나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은 같았다. 공자는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굽은 사람을 버리면 백성들이 정치에 복종한다고 말했다. 공자의 굽은 사람이 다산의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왜 어리석은 자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현명한 사람은 아랫자리에 굽혀 있어야 하느냐고 묻는 것이다. 이런 굽은 정치에 대한 다산의 해결책은 당파적 시각을 없애고 공도를 넓혀서 현명한 이를 진출시키고 불초한 자를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나 다산의 권고는 잘 먹히지 않는다. 인사권자 자체가 당파적 시각에 사로잡혀서 당파적 이익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답했다. “양식을 풍족하게 하고, 군사를 충실하게 갖추고, 백성들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자공이 “부득이 하나를 꼭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다시 묻자 공자는 “군대를 버려야 한다”고 답했다. 이에 자공이 “또 나머지 둘 중에서 부득이 꼭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라고 또다시 묻자 공자는 “양식을 버려야 한다. 자고로 누구나 다 죽지만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존립하지 못한다”라고 답했다.(‘논어’ 안연)
백성이 복종하게 만드는 요체를 물은 노나라 애공의 질문에 대한 답과 마찬가지 답변이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백성들의 신뢰를 받는 것인데, 그 방법은 곧은 자를 쓰고 굽은 자를 버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정약용은 ‘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왜 누구는 토지의 이익을 모두 차지해 부유하게 살고, 왜 누구는 토지의 혜택을 얻지 못해서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가? 그래서 토지를 개량하고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정(政)이다.”(정약용, ‘원정’)
2백여 년 전의 글인데 마치 지금의 현실을 질타하는 듯하다. 같은 백성인데 누구는 부동산 광풍에 앉아서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누구는 평생 일해도 집 한 칸 마련하기 힘드냐는 것이다. 다산은 또 “같은 우리 백성인데 왜 누구는 땅이 많아서 그 풍요로움이 남는 곡식을 버리는데, 누구는 이지러진 땅도 없어서 모자라는 곡식을 걱정만 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역시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질타하고 있는 듯하다.
다산은 자신의 정치관을 펼치기 위해서 정계 복귀를 꿈꿨지만 무산되고 말았다. 지금 서민들을 위한다는 정치가들이 화려한 말의 성찬을 늘어놓고 있지만 서민들은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아우성이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득표용 구호에 불과했는지, 이상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것 아니었는지, 정확한 진단에서 정확한 처방이 나온다.
<신한대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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