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떠나온 지 2년 “출소 후 첫 성묘…트라우마 벗어났으면”
“수사기관이 항상 옳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수를 했거나 잘못했다면, 또 그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이 파탄났다면 최소한의 사과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경찰과 검찰 등 공권력의 부실 수사로 누명을 써 성폭행범으로 몰려 3년여 옥살이를 하다가 무죄로 풀려난 김민수(63·가명)씨<광주일보 2020년 12월 16일 6면>의 올해 설맞이 ‘소망’이다.
“가족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누명을 벗어 자유의 몸이 됐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몸은 자유롭지만 마음은 아직도 교도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자 무고죄까지 씌워놓고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하기가 그렇게 어려울까요”
전남경찰과 검찰이 총체적 부실수사로 애꿎은 시민에게 누명을 씌워 옥살이를 시켜놓고도, 아직까지도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의 비난이 거세다. 수사기관도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 있는 사과’로 검·경이 지역민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씨는 지난 2016년 1월, 지적장애가 있는 미성년자 A양과 그의 고모부·고모의 악의적 거짓진술에 성폭행범으로 몰렸다. 그는 수사과정에서 수백 번 결백과 의혹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무고죄까지 뒤집어 써, 무려 징역 6년형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의 결백을 믿은 세명의 딸들이 아버지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마을 주민 200여 명을 직접 만나 결백과 관련된 증언를 받아내, 3년여 만에 무죄로 풀려났다.
출소 이후 그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이 지난해 10월 처벌받으면서 김씨는 올해서야 차례상을 차리는 설다운 설을 보내게 됐다고 한다. 그동안은 성폭행범으로 보는 주위의 눈초리 탓에 외부활동도 하지 못했다.
김씨는 성폭행범으로 낙인이 찍히면서 친구와 친척들과도 단절됐으며,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던 마을 사람들로부터도 손가락질을 받은 기억에 아직도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그는 견디다 못해 그동안 살았던 시골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한 상태이다. 상경한 지도 벌써 2년이 됐지만 아내와 세 딸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방안에 틀어박혀있던 김씨가 트라우마를 벗기 위해 출소 후 처음으로 설 차례상을 차리고, 성묘도 할 예정이다.
이제 김씨의 유일한 소원은 부실 수사를 했던 경찰과 검찰로부터 진정어린 사과 한마디를 듣는 것이다.
김씨는 “현재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 수사기관들은 오히려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당시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었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오히려 최근에는 사건을 담당한 경찰 관계자 중 일부는 진급까지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또 “직관과 경험만을 내세운 수사로 애먼 사람을 간단히 성폭행범으로 만들었으면서도, 사과는 뭐가 그리 어려운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김씨가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의 최종변론 기일이 진행되고, 다음 기일에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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