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한파까지
보일러 오래돼 제대로 작동 않고
전기장판도 없이 담요만 겹겹이
한파에 화장실 변기 얼어붙어
“유독 추운 겨울 빨리 끝났으면”
김명동(77) 할아버지는 오늘도 한 시간을 걸어 삼각산 속으로 가 용변을 봤다. 북극발 한파가 몰아치기 훨씬 전부터 얼어붙은 화장실 배관은 도통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매일 미끄러운 산길을 올라야하는 처지가 됐다. 코로나와 빙판에 둘러싸여 이불 속에서 버텨왔지만 생리 현상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밑으로 떨어진 며칠 전, 폭설에 도저히 산길을 가기 무서워 화장실을 열고 꽝꽝 얼어붙은 변기통 물을 대걸래 막대기로 내리쳤다가 힘만 팔렸다.
“없이 사는 게 죄야.” 김씨 할아버지의 낮은 혼잣말이 좁은 단칸방에 울렸다. 보일러가 있지만 오래돼 23도 이상으로 올리기라도 하면 여지없이 꺼진다. 방 안에서는 웃풍이 사방에서 불고 바닥에서는 찬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방 안에 걸어놓은 옷가지가 마를 날이 없다. 내복을 입고 이불을 꽁꽁 둘러도 냉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는 게 김씨 할아버지 말이다. 온수도 나오지 않아 이불 빨래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김씨 할아버지는 이 곳 단칸방에서만 수년 째 겨울을 났다. 그래도 올해 추위가 가장 지독하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함께 추위를 이겨낼 또래 노인들도 만나기 어렵고 자주 들렀던 사회복지 공무원들과도 전화로 안부를 나누는 일이 많아졌다.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고 있는 취약계층이 김 할아버지 뿐일까.
12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광주지역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8만 4762명으로 차상위계층(3만5910명)까지 포함하면 11만명이 넘는 취약계층이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다.
남구 백운동 단독주택에 사는 6·25 참전용사 최기봉(가명) 할아버지 부부도 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최 할아버지는 올해로 92세. 자신도 힘들지만 뇌졸중을 앓았던 아내, 건강이 좋지 않은 환갑의 아들까지 살펴야 한다.
벌이는 시원찮은데 챙길 게 많다보니 겨울에도 허리띠를 꽉 조여야 한다. 예전에 가스비가 20만원 넘게 나온 뒤 보일러도 하루에 한 번만 켠다. 최 할아버지가 냉동고 같은 집 안에서 두 세벌의 옷을 챙겨입고 사는 이유다. 말하는 최 할아버지의 입에선 허연 입김이 나왔다.
최 할아버지는 “가스요금 지원금은 한달에 만원인데, 감당할 수 없어 저녁 때 잠깐 켠다”고 말했다. 몸이 좋지 않은 할머니는 하루종일 전기장판에 누워 생활한다. 할머니는 얼마 전 잠시 나갔다가 빙판길에 넘어져 다리까지 다쳤다. 최 할아버지는 “전기장판 없으면 얼어죽는데 오래되서 그런지 온도를 가장 높여도 미지근하다”고 했다.
가난은 불편도 가져온다.
북극발 강추위로 광주지역 곳곳에 동파 신고가 쏟아지던 날, 최 할아버지 집 화장실도 얼어붙었다. 그나마 주방 싱크대 물이 조금씩 나온 게 다행이었다. 90대 최 할아버지는 그 물을 끓여 화장실을 녹였다.
최 할아버지는 “이번 겨울은 유독 춥고 긴 것 같다. 빨리 겨울이 끝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구 농성동에 홀로 사는 김영균(가명·81)씨도 지난 주말, 추위에 밤을 샜다.
연립주택 밖에 설치된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면서다. 추위 때문에 집안에서도 털모자를 벗지 않고 지낸다는 김씨는 최근 일주일간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동사무소에서 매주 배달해주는 일주일치 식사로 끼니를 해결해왔다. 김씨는 “공공근로도 하고 복지관에서 친구들도 만났는데 코로나로 모든 게 멈췄다”고 말했다. 추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아프고 독하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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