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지음
그는 자주 논쟁의 중심에 섰다. 불특정 다수의 비난의 한 가운데 있었다. ‘젊은 시절 세번의 결혼과 세번의 이혼으로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온갖 구설에 시달리는 예순을 앞둔 늙은 여성 작가’인 그녀는 다섯 건의 고소 고발을 당해 경찰서를 오가고 있었고, 인터넷을 열면 입에 담지 못할 악플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고 대출은 많았고 마이너스 통장은 날마다 그 한도를 향해 떨어지고 책은 예전보다 팔리지 않았다. 침이 나오지 않아 외출할 때면 1.8ℓ짜리 생수 두 병을 지니고 다녀야 했고, 이유 없이 검은 피를 쏟고 몸이 퉁퉁 붓는 등 건강도 완전히 망가졌다.
소설가 공지영이 4년만에 출간한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공지영의 섬진 산책’은 지리산과 섬진강 곁 15평 남짓의 소박한 집에서 지내며 ‘날마다 점점 행복해지기로’ 하고 조금씩 스스로를 긍정하고 사랑하게 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나는 스스로 죽어도 될 이유를 30가지도 더 가지고 된 사람이었다’라는 제목을 단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나는 내 인생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막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공식 육아’가 끝났다고 스스로 선언한 그는 돈을 탈탈 털어 섬진강변 평사리에 작업실을 마련했고, 이 곳에서 아슬아슬하지만, 작은 평안을 얻는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은 예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한 번 뿐인 내 인생, 이렇게 살다 죽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여전히 나를 상처 입히고 싶어했지만” 섬진강의 윤슬, 사시사철 피는 꽃과 나무, 커피와 와인, 그리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며 평온을 유지한다.
공지영은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는다. 늘 죽음을 생각하던 날들,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던 날, 친한 친구와 동료를 잃던 날, 열심히 살려 발버둥칠수록 쏟아지는 악플에 상처 받았던 날들을.
책은 그녀의 섬진강 집에 찾아와 “당신이 겪은 온갖 불행을 다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 묻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10대 때부터 동생을 돌보며 공부해 대기업에 들어간 후 해고 노동자를 도우려다 사기를 당해 빚더미에 앉은 H, 평생 돈을 벌지 않고 자식에게 기대오다 이제는 돈을 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는 부모에게 착한 딸로 남고 싶어하는 J,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육아로 경력단절 됐고 남편의 바람기를 의심하는 자신이 싫어 마음이 지옥인 S에게 전하는 글이지만 결국은 작가 자신에게,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은 도시를 떠나 섬진강변으로 완전 이주한 작가는 모두에게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행복을 만끽하라”고 말한다. 인생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며 고통 속에 써 내려간 글들이기에 그녀가 말하는 ‘행복’이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온다.
< 위즈덤하우스·1만5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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