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정원 꾸민 광주 출신 황지해 환경 미술가]
골목 벽화·도로 조형물 등 공공장소를 예술작품으로 변신
‘정원’은 좋아하는 표현 방식...‘해우소 가는 길’ 등 3개 작품, 교과서에 실리기도
“저는 활동가도 아니고, 환경운동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원을 통해 사람과 자연 간 ‘배려’를 배웠지요. 정원과 식물을 통해 환경 보전, 생태 다양성, 종의 보전 등 가치를 전달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정원 디자이너이자 환경 미술가인 황지해(여·44) 작가는 최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옥상정원을 꾸몄다. 공식 개장을 앞둔 이 작품은 원기둥같은 건물 형태를 고려해 식물의 기관인 ‘물관’을 본따 만들었다. 이 곳 정원에서는 미술관 내 설치된 백남준 작가의 작품도 한 눈에 보인다고 한다.
황 작가는 이 작품에 자신의 철학을 불어넣었다고 했다. 정원을 통해 생태 순환을 재현하고, 삶의 이치와 원리를 형상화하는 것이다.
광주 출신인 황 작가는 정원 ‘해우소 가는길’,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 등으로 영국 왕립 원예 협회 첼시 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에서 금상·최고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 작품들은 지난 2016·2017년 중·고등 미술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그는 환경 디자이너들로 구성된 그룹 ‘뮴’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작은 골목 벽화부터 도로 조형물, 아파트 단지 내 정원 등 공공장소를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고 있으며, 그 중 ‘정원’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 방식이다.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심으면서 조금씩 시야가 넓어졌어요. 심미성을 넘어 공간과 연결성, 사람과 자연의 공존까지 고민하면서 평면미술에선 느낄 수 없었던 진실됨, 정직함, 경이로움을 느꼈죠. 그래서 더 정원을 좋아하게 되고, 현장에서 일하는 걸 즐기게 됩니다.”
황 작가는 1999년 목포대 미대를 조기졸업하고 곧바로 환경미술에 뛰어들었다. “지방 출신인데다 서양화를 하면 생존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낯선 장르였지만, 그야말로 ‘직접 부딪히며’ 익힌 환경미술은 그에게 큰 의미를 줬다.
힘든 일도 있었다. 지난 2017년 서울역 광장에 헌신발 3만 켤레를 엮어 설치한 작품 ‘슈즈트리’가 ‘흉물 논란’에 휩싸인 것이다. 황 작가는 헌신발을 통해 도시가 나아갈 방향성과 자연성에 대한 회복을 표현하려 했지만, ‘냄새날 것 같다’는 등 주장에 빛이 바랬다.
‘예술’과 ‘흉물’이라는 두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혔던 이 작품은 지난해부터 초등 미술교과서에 등재돼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토론에 활용되고 있다.
“시민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언론을 따라 편향되게 바라봐서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최근에는 교과서에서 ‘슈즈트리’를 다루고, 다음 세대를 위해 담론 기회를 줬으니 너무 감사한 일이죠.”
황 작가는 앞으로도 정원예술을 계속해 환경 보전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지고자 한다. 내년에는 중국, 미국 필라델피아, 캐나다 퀘벡 등에 작품을 출전할 예정이다.
그는 “정원을 예술로 승화하는 게 목표이자 제 역할”이라며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대화하겠다. 모든 지식과 창작의 근본과 원천인 자연을 보전한다는 그 가치를 나누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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