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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 담긴 세상

[고규홍의 ‘나무 생각’] 개발 이익의 희생물이 된 나무

by 광주일보 2020.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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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꼬리를 물고 잇따라 태풍이 찾아든다. 두 개의 태풍이 동시에 한반도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모두 나무뿌리가 뽑힐 만큼의 위력을 가진 태풍이라고 한다. 그래도 너른 들에 서 있는 나무는 아무 대책을 세울 수 없다. 맞서 싸워 이겨 내는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로 여겼던 괴산 삼송리 왕소나무를 무참히 쓰러뜨린 건 2012년의 태풍 볼라벤이었다. 제주 도민들의 한 맺힌 역사를 기억하고 서 있던 제주 성읍마을 팽나무를 무너앉힌 건 2011년의 태풍 무이파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동백나무로 꼽힌 여수 율림리 동백나무의 줄기를 부러뜨린 건 2005년의 태풍 나비였다.

자연의 흐름 앞에서 나무는 쓰러지고 죽을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나무의 운명이다. 그러나 나무의 죽음이 더 참담하게 다가오는 경우는 따로 있다. 자연의 흐름이 아니라, 사람의 탐욕에 의해 생명을 잃어야 하는 경우다.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 주며 살아가는 나무의 생명을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는 경우들이 그렇다.

사례를 헤아리자면 한이 없겠지만, 1988년에 천연기념물 제355호로 지정된 전주 삼천동 곰솔은 그런 대표적인 나무다. 삼백 년쯤 된 전주 삼천동 곰솔은 생기 넘치게 살아 있던 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곰솔로 인정되던 나무다. 키 14m, 가슴 높이의 둘레가 4m, 게다가 동서로 34.5m, 남북으로 29m나 펼친 나뭇가지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웠다. 굵고 곧은 가지 하나가 우뚝 솟아오르다가 여러 개의 가지로 뻗으며 수평으로 넓게 펼친 수려한 모습이 마치 한 마리의 학이 날아오르는 듯해서 ‘학송’(鶴松)이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나무다.

삼백 년의 긴 세월 동안 나무가 살던 곳은 도시 외곽의 고요하고 평안한 낮은 산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반, 이 지역에 난데없는 개발 열풍이 불어닥쳤다. 나무가 서 있는 산과 주변의 들녘이 택지로 지정되어 개발이 시작됐고, 나무 곁에는 10차선 도로가 뚫렸다.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건 당연한 순서다.

고층 아파트의 검은 그늘과 대로의 잿빛 매연 사이에 놓인 곰솔 부근 지역만 개발 과정에서 제외된 건,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이어서였다. 개발이 완료되자 곰솔 보호구역은 도심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하나의 섬처럼 생뚱맞았다. 곰솔 앞의 10차선 도로에는 자동차들이 소음과 매연을 뿜으며 내달렸고, 나무를 둘러싼 고층 아파트는 나무가 받아야 할 바람과 햇살을 가로막았다. 나무는 생기를 잃어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나무는 갑자기 솔잎을 한꺼번에 떨구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무의 밑동에 예리한 공구를 이용해 뚫은 여덟 곳의 구멍이 발견됐고, 구멍 안쪽에서는 나무에게 치명적 독극물인 제초제의 흔적이 있었다. 2001년의 일이다. 나무가 완전히 죽어서,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면, 보호구역이 해제될 것이고, 그리 되면 그 동안 소외됐던 개발 이익을 늦게나마 챙길 수 있으리라 생각한 사람의 소행이라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삼천동 곰솔은 차츰 생명의 기운을 내려놓아야 했다. 솔잎을 떨군 나무는 싱그럽던 가지까지 차례대로 부러뜨렸다. 햇살 드는 동쪽으로 난 가지 일부를 제외한 모든 가지가 꺾였다. 참혹했다. 나무의 흉측해진 모습은 마치 개발과 성장에 눈먼 사람의 감춰진 속내를 반영한 듯했다. 곧바로 나무의 죽음을 막으려는 시민의 노력이 모였고, 문화재청과 전주시청까지 나서서 나무는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살아남기는 했다. 하지만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우리 곁의 나무들을 잘 보살피고 아름답게 살리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사람살이를 더 아름답게 가꾸는 일과 다르지 않다. 나무 몇 그루를 더 심어 성과를 올리겠다는 사업보다는 지금 우리 곁에서 긴 세월 동안 우리 삶을 지켜 온 나무를 한번 더 돌아보고 더 오래 지키는 것, 바로 그것이 생태계 파괴의 시대에 우리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길임을 깨달아야 할 때다.

<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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