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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일흔 다섯 老 화백의 중·고시절 작품을 만나다, 서양화가 노의웅

by 광주일보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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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들 많이 관람했으면…어른들에겐 학창시절 추억을”
연말까지 ‘63년 전 중·고 시절 작품전’

 

올해 일흔 다섯의 노의웅 화백은 60여년전 중·고등학교 작품을 전시하는 기획전을 노의웅미술관에서 열고 있다.

전시실에서 만난 올해 일흔 다섯 노(老) 화백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쑥스러운듯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뭔가 뿌듯함도 엿보였다. 그가 지금 소개하는 작품은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그렸던 그림들이다.

‘63년 전 중·고 학창 시절 작품전’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전시장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서양화가 노의웅(전 호남대 미술학과 교수) 화백의 삶의 흔적들이다. 그는 60년도 넘은 작품을 무려 300여점이나 보관하고 있다. 드문 일이다.

노 작가는 지난 2018년 광주시 남구 양과동에 노의웅미술관(남구 수춘안길 7)을 오픈하고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왔다. 9월 첫날부터 오는 12월 30일까지 4개월간은 4차례에 걸쳐 중·고등학교 시절에 그렸던 수채화와 소묘, 유화 작품 200여점을 선보인다.

광주 토박이인 노 작가는 지금의 우산동인 광산군 서방면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다. 작가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5살 때였다고 말한다. 도화지는 푸른 하늘이었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은 멋진 소재였다. 상상 속에서 수많은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 하던 그에게 ‘드디어’ 도구가 주어졌다. 서방국민학교에 입학해 구호물자로 크레용과 도화지를 받았고, 학교에선 하루 2~3시간씩 매일 그림을 그렸다. 손재주는 있었는지 칭찬을 받았고 반공 포스터는 늘 그의 차지였다.

동성중 재학 시절엔 교장실에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미술실을 만들어주시면 좋겠다” 당차게 이야기했고 허락을 받아 교실 한칸을 미술실로 만들어 줄기차게 그림을 그렸다. 광주상고 재학시절엔 당시 미술 교사와 함께 초등학교 미술실기대회를 개최하기도했다. 당시 김은수 미술교사는 그를 사제지간을 넘어 ‘친구’처럼 대해줬고, 노 작가는 지난 2017년 자비로 스승의 유작전을 열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하는 그림은 바로 ‘그 때’ 그렸던 작품들이다. 주변에 학창시절 작품을 보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보여주는 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고 욕심도 생겼다. 이런 컬렉션을 갖고 있는 이들은 거의 없으니. 큰 마음을 먹고 작품을 정리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이 보여’ 추억을 더듬어가며 중·고등학교 작품을 구별했다. 첫번째 기획전은 ‘중학교 시절’의 수채화와 소묘를 선보이는 중이다.

그의 말처럼 변변한 가르침 없이 ‘독학으로’ 배운 그림들은 대부분 ‘미완성’이다. 빼어난 기교도, 화려한 색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진심이 있고, 당시의 풍경들이 남아 있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어 도화지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작품들도 있지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작품이다. 직접 만든 사인은 미소를 짓게 한다.

전시에서는 경양방죽 풍경, 뽕뽕다리 옆 판잣집, 농장다리에서 바라본 무등산 풍경, 마당의 낡은 우물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림 그리기 좋아하던 소년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그려나갔다. 아그리파 등 다양한 석고상들을 소묘한 작품도 눈에 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무엇보다 학생들이 많이 와서 보면 좋겠다고 했다.

“아마 학생들이 와서 보면 참 못그렸다 할 거예요.(웃음) 이렇게 내놓는 게 한편으로는 창피하기도 한데 혼자서 몸부림치면서 해보려고 했던 그 마음, 어설프긴 해도 순수함과 순수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요즘 학생들은 실력은 좋지만 학원에 가서 일률적으로 배우다 보니 다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 아쉽죠. 어린 소년이 ‘혼자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순수한 그림을 그렸던 때를 사람들이 기억해 주면 좋겠네요. 또 미술을 전공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학생들이 ‘아,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하며 미술시간을 즐겁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작가들에게 아카이빙 작업은 중요하다. 취재를 하다 보면 젊은 시절 작품을 보관하고 있지 않아 아쉬워하는 작가들을 많이 만난다. 그런 점에서 노 작가는 행복한 경우다.

“이렇게 작품을 간직하고 모을 수 있었던 건 혼자 힘이 아니예요. 어머님은 제가 그림 그리는 걸 환영해주셨죠. 제가 그린 그림을 장농에 소중히 보관해주셨어요. 결혼 후에는 아내가 그림을 잘 관리해 주었죠.”

그는 혹여 전시장을 찾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관하고 간직하는 것에 대한 작은 생각이라도 가져가면 좋겠다고 했다. 또 하나 작품을 보러 오는 일반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하고 싶다고 했다.

“어른들은 자기들 어린 시절, 학창 시절의 미술 시간을 돌아보며 좋을 것같아요. 그 때의 미술시간을 생각하며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거죠. 그 때의 순수함과 순박함도 떠올려보구요.”

노 작가는 작품을 정리하며 종종 생각에 빠져들었다. 늘 화가의 꿈을 꾸었던 옛날의 노의웅, 제대로 된 지도를 받지 못해 그림 실력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에 푹 빠져 있는 노의웅을 다시 만나는 즐거움은 컸다. 노(老) 작가는 그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화가 노의웅이 있다며 앞으로도 그림 그리는 삶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싶다고 했다.

전시장 한 켠에는 내년 ‘소’의 해를 기념하는 그림 한 점이 전시돼 있다. 그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작품 5점을 증정하는 작은 이벤트도 준비중이다. 월·화요일 휴관.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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