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간 550㎜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로 광주·전남 곳곳에서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가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잇따르고 있다.
◇불어난 강물에 모든 걸 잃은 구례 주민들=8일 오후 방문한 구례군 구례읍은 침울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오일장이 열리기로 했던 이날 오전, 손님 맞이에 분주했던 장터 상인들이 맞이한 건 손님이 아닌 흙탕물이었다.
섬진강이 범람하며 오전 8시께 읍내 전체가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물은 30분 만에 읍내 전체를 집어 삼켰다. 건물 간판과 한옥 기와 상부만이 머리를 내밀고 있을 뿐이었다.
내다 팔 생선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장에 나왔던 노인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물난리에 생선 한 마리도 건지지 못하고 대피할 수 밖에 없었다.
대피소인 구례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만난 봉동리 주민 안모(여·69)씨는 “내가 평생 한푼 두푼 모아가며, 한 마리씩 사 모은 소가 어딜 갔는지 알 길이 없다”며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 정말 속상해 죽겠다”며 울분을 토했다.
안씨 외에도 전 재산인 소를 잃었다는 상실감에 대피소 한 켠에 몸져 누워있는 봉동리 주민이 한 둘이 아니었다.
물에 잠긴 집과 가게를 바라보며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는 주민도 여럿이었다.
농약상을 운영하는 정모(45)씨는 “물이 빠지면 물건들을 꺼내 확인해 봐야 겠지만, 가게가 전부 물에 잠겼으니 건질 것도 없을 것”이라며 “10일 다시 비가 온다는 데, 물이 빠지고 재정비를 한다한들 보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오남매 휴가 마지막날 발생한 참변=8일 오후 방문한 곡성군 오산면 선세리 성덕마을. 이 마을에서는 지난 7일 오후 8시 30분께 기록적인 폭우로 마을 뒷산 토사가 무너져 내리며 주택 5채를 덮쳤고, 이 사고로 마을이장 윤모(53)씨 부부 등 주민 5명이 숨졌다.
이 마을 출신인 윤씨는 7년 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윤씨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오남매가 함께 자라왔던 집을 지키기 위해 귀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는 떠나간 부모님을 대신해 농사를 지으며, 여동생 4명의 부모 노릇을 했다.
특히 이 날은 오남매가 함께 2박 3일간의 휴가를 보내던 마지막 날로 오남매는 사고가 발생하기 1시간 여 전까지 함께 있었던 터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윤씨의 여동생은 “오빠는 마지막날까지 우리들에게 소고기를 구워주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 것 같다”며 “3일 내내 비가 많이 왔던 터라 집을 나서며 오빠부부에게도 같이 곡성을 나가자고 얘기했지만, 오빠는 괜찮다고 했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 집으로 향하던 여동생들은 산사태가 발생해 오빠가 토사에 매몰됐다는 주민들의 연락을 받고 다시 곡성으로 돌아왔지만 산사태로 통행이 제한된 탓에 고향집으로 가지 못하고 읍내에 머물다 밤 11시께야 오빠의 사망소식을 접했다고 전했다.
윤씨의 여동생은 “그때 오빠가 우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면 이런 사고는 당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오열했다.
폭우와 산사태로 마을 곳곳이 폐허가 된 담양군 무정면 봉안리 술지마을에서도 초등학교 2학년 A군이 대피 과정에서 불어난 물에 휩쓸려 참변을 당했다.
광주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A군은 여름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외가에 온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구례·곡성=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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