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인제 기적의 도서관
11m 높이 유리천장 통해 쏟아지는 자연 채광
2만5000여 장서 계단식 서가 따라 원형 배치
음악·미술 등 6개 동아리방 방문객에 인기존
실내서 설악 감상…XR-뮤지엄 메타버스 구현도
일본 사가현의 다케오시는 인구 5만 명의 소도시다. 내세울 것이라고는 온천과 수령(樹齡)3000인 녹나무가 전부나 다름 없다. 그렇다보니 직장과 학업 등을 이유로 매년 대도시로 떠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2013년 다케오 시립도서관이 문을 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당시 시장으로 당선된 히와타시 게이스케는 침체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카드’를 고민하던 중 지역발전의 플랫폼으로 도서관을 추켜들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 폰에 빠져 도서관을 찾지 않는 시대가 됐지만 오래 머무를수 있는 ‘환경’을 꾸미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에서였다. 그로부터 5년후. 다케오시는 민간 전문가들로 주축이 된 츠타야 서점과 손을 잡고 누구나 자유롭게 책을 골라 볼 수 있는 ‘열린 서가’와 서점, 도서관, 카페가 공존하는 ‘세상에 없는 도서관’을 구현해 전 세계에서 100만 명이 다녀가는 랜드마크로 키워냈다.
강원도 인제에 자리한 기적의도서관(인제군 인제읍 인제로 140번길 52-7)은 ‘한국의 다케오’를 연상시킨다. 그도 그럴것이 인구 3만 2006명(2024년 1월 기준)의 소도시인데다 전국의 관광객들을 불러 들일만한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많지 않아서다.
하지만 지난해 6월 28일 ‘시간을 넘어 무한한 상상’이라는 슬로건을 모토로 문을 연 인제 기적의 도서관은 개관 1년 만에 약 10만 명(지난 5월말 기준)이 다녀가는 등 이름 그대로 시골 도서관의 ‘기적’을 만들어 냈다. 1년전까지만 해도 백담사나 자작나무숲이 유명했지만 이젠 기적의도서관을 ‘일부러’ 둘러 보기위해 방문객이 늘고 있는 것이다. 한달 평균 방문자수는 인제군 인구의 4분의 1인 8594명. 도서관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전국 135개 단체에서 2494명이 방문했다. 가히 신드롬에 가까운 쾌거다.
다케오와 다른 점은 ‘프랜차이즈’ 도서관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적의 도서관은 지난 2003년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이 MBC 교양프로그램 ‘느낌표’와 공동으로 추진한 어린이 전문 도서관 건립사업이다. ‘이 나라의 모든 어린이는 밝게, 바르게, 자유롭게 자랄 권리를 갖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제1호 순천을 시작으로 정읍, 김해, 서귀포, 서울 등에 이어 17번째로 지어진 강원도의 첫 기적의 도서관이다.
인제 기적의 도서관(이하 기적의 도서관)에 다다르면 가장 먼저 소박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얼핏 도너츠 모양을 떠올리게 하는 콘크리트 외관은 화려한 건축미와는 거리가 멀다. 대신 어린이 이용객들을 위한 거대한 크기의 곰 인형 조형물과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방문객을 반갑게 맞는다. 하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반전’이 펼쳐졌다. 지하 1층, 지상 2층까지 약 11m 높이의 천장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자연 채광은 거대한 온실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한낮에는 굳이 조명이 필요없을 만큼 밝고 넓은 실내 분위기가 장관을 연출했다. 대지면적 3023평(9,993㎡), 연면적 906평(2,996㎡), 건축면적 673평(2225㎡)으로 소박한 외양과 달리 원통형의 구조는 탄성을 자아낸다. 밖에서 보면 둥근 도너츠 형상인 것과 무관치 않다. 태양광 패널의 천장에는 창문이 나 있어 햇살이 도서관을 비춘다. 햇빛의 세기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그림자가 도서관 바닥에 만들어내는 문양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여기에는 이용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 구성이 한몫한다.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2만5000여 권의 장서를 수장고가 아닌 계단식 서가를 따라 원형으로 배치해 마치 ‘지식의 바다’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철저히 이용자들의 동선에 맞춰 공간을 설계한 덕분에 도서관 어느 곳에 자리를 잡고 앉더라도 자유롭게 책을 꺼내 읽을 수 있다.
인상적인 건 지하 1층과 지상 2층을 하나의 공간으로 설계한 독특한 설계다. 2층의 열람석에서 앉으면 지하 1층의 계단식 열린 극장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각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특히 1층에서 내려가는 계단식 열린 극장은 ‘도서관에서는 정숙해야 한다’는 편견을 깬 공간이다. 이곳에서 명사의 북토크가 열리지만 열람석의 이용자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또한 2층의 열람석과 이어지는 통로 곳곳에는 다양한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는 ‘음악 스튜디오’ ‘미술 스튜디오’ 등 6개의 동아리 방이 있다. 음악 스튜디오에 설치된 전자 피아노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미술 스튜디오에선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느라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자녀들의 취미활동을 위해 차를 타고 인근 지역으로 갈 때가 많았던 1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기적의 도서관이 인제에 둥지를 틀 게 된 데에는 이같은 사정이 반영됐다. 책읽는 사회문화재단은 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창조적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도서관 건립 프로젝트의 17번째 후보로 인제군을 선택한 것이다. 재단은 이상윤 연세대 건축공학부 교수와 ‘지안 건축’에 설계를 의뢰한 후 완성된 ‘도서관 설계안’을 군에 기증했다. 인제군은 군비와 국비를 매칭펀딩한 180억 원을 투입해 2019년 7월 공사에 착수한 후 3년 만에 지난 2022년 12월 완공했다.
기적의 도서관이 여타 공공도서관과 구분되는 차별점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국에는 1300여 개의 도서관이 있지만 인제군은 아름다운 자연을 도서관에 녹여내기 위해 내부 공간을 기능적으로 활용하는 데 초점을 뒀다. 이를 위해 공공도서관 최초로 설악의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몰입형 미디어아트공간을 꾸민 데 이어 자작나무 숲에서 명화를 감상하며 힐링할 수 있는 XR-뮤지엄 메타버스 공간을 구현한 것이다. 이러한 독창성 덕분에 기적의 도서관은 지난해 2월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가 선정하는 도서관 부문의 한국문화공간상을 수상했다.
심민석 인제기적의도서관 관장은 “도서관 개관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지역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아름다운 자연을 어떻게 도서관 공간에 담아내는 가’였다”면서 “(기적의 도서관은) 도서관에 대한 좋은 기억을 통해 고향에 오면 들르는 곳, 자녀와 함께 다시 오는 공간, 나아가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문화도시의 플랫폼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인제=박진현 문화선임 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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