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민으로 살아가기 <1> 광주미술관회
2004년 문화시민 양성 목표로 탄생한 후원모임
지난해 기획재정부 공익법인 지정 받고 재탄생
김영희 이사장 주변 지인들에 손짓해 이사 영입
회원 50여명 십시일반 기금 모아 운영
문화마실-소장가와의 대화·학생 미술대전 등
창작-향유자 잇는 다양한 사업 지역 문화계 반향
21세기는 ‘문화’가 화두인 시대다. 무엇보다 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 문화 중심도시를 표방하는 광주의 비전은 ‘문화’가 그 핵심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대표도서관 등 화려한 건축물이 속속 들어서고, 매머드 프로젝트들이 진행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문화를 향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시설도 빛이 바랠 뿐이다. 문화는 더 이상 소수 애호가들만이 누리는 사치가 아니다. 저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 문화시민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을 소개한다.
“예향 광주의 문화예술적 자존심과 미술 대중화를 실현하는 초석이 되겠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던 지난 2004년 5월6일, 문화도시의 위상에 걸맞은 문화 시민을 목표로 시립미술관의 자발적인 후원모임이 탄생했다. 다름아닌 (사)광주미술관회다. 지난 1992년 개관한 광주시립미술관의 발전과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초대 회장을 맡은 김응서 회장 을 비롯해 각계 인사 30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후원조직인 (사)현대미술관회를 벤치마킹해 창립한 (사)광주미술관회는 창작자와 향유자를 아우르며 미술강좌, 작가 지원, 선진미술관 기행 등을 통해 미술발전에 적잖은 기여를 했다. 하지만 이후 임기제인 시립미술관장들이 바뀌면서 광주미술관회의 활동도 뜸해져 아쉬움을 주었다.
그로부터 10년 만인 지난해 9월, 광주미술관회가 지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광주미술관회를 창설한 김응서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기획재정부로부터 공익법인으로 지정받은 ‘광주미술관회’(이사장 김영희, 이하 미술관회)가 새로운 간판을 달고 광주시립미술관과 업무협약을 맺고 공식활동에 들어간 것이다.
취재차 김영희 이사장 일행을 만난 곳은 지난달 중순, 중외공원에 자리한 광주시립미술관이었다. 마침 이날은 광주시립미술관의 ‘2023 소장품 기획전:수집_호남의 기억과 시간’전이 열리고 있었다. 시립미술관이 지난 한해 소장한 광주미술사, 근현대미술사의 대표작들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로, 김 이사장을 필두로 김향림, 김현, 여예강 등 4명의 실무 이사들은 전시장에 내걸린 작품들을 흥미롭게 관람하며 감상평을 나눴다.
“어떻게 이런 색감을 표현할 수 가 있지. 정말 대단해. ” “평소 좋아하던 작가인데 예전에 본 풍경화와는 다른 분위기가 신선하네.”
전시장을 둘러보는 이들의 표정은 활기가 넘쳤다. 그도 그럴것이 ‘미술’을 즐기는 애호가라는 공통점이 있어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다. 미술관회가 가져다 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자 변화다.
“지난해 미술관회를 맡게 되면서 ‘뜻을 같이할’ 이사들과 회원들을 유치하는 게 첫번째 미션이었어요. 평소 시간적인 여유가 되면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는 지인들을 ‘공략해’ 끌어 들였어요. 아무래도 미술관회가 잘 굴러가려면 기금이 필요했거든요(웃음). 회원은 10만원, 이사는 1000만 원을 기부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흔쾌히 참여했어요. ”
김 이사장의 말대로 이들 세 사람은 그녀의 러브콜에 가장 먼저 응답한 지인들이다. 광주미술관회의 새 출발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김 이사장의 손을 잡아준 건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치과의사인 김현씨는 제13회 광주비엔날레 도슨트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소문난 미술애호가이다. 그래서인지 미술관회와의 만남은 김씨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김씨는 “비엔날레 도시이지만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며 “미술에 대한 조예가 없더라도 자주 보고 마음을 열면 그림에 대한 안목이 생기는 것 처럼 미술관회가 미술관의 문턱을 낮추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문화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여예강(44)씨는 미술관회의 ‘젊은 피’이자 기획통으로 불린다. 50여 명의 회원 가운데 상당수가 50대 이상이어서 사업이나 홍보 등을 추진하는 데 젊은 세대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김 이사장이 적극 영입한 케이스다.
지난해 발족된 신생조직인 만큼 구체적인 사업이나 활동 계획이 많지 않지만 가정의 달을 맞아 오는 5월 25일 처음으로 개최하는 ‘광주학생미술대전’이나 해설이 있는 문화마실, 소장가와의 대화 등에 전문적인 의견을 내놓는 브레인 역할을 한다.
민화 강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김향림(57)씨는 해외에서 예술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김씨는 “과거에 비해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지역에선 미술관 산책은 일부 사람들만의 전유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미술과 친해지기 위해 옛 서민들이 즐겨 그렸던 민화에 관심이 생겨 추계예술대에서 1년간 공부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고 귀띔했다.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부활한’ 미술관회의 지난 1년에 대한 소회를 묻자 이구동성으로 ‘격동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대표직을 맡은 김 이사장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오랫동안 일한 소아과 병원을 ‘정리’하고 잠시 숨을 고르던 그녀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광주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노동일(광주FC대표)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1년 동안 미술관회가 펼친 사업들은 지역 문화계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9월 광주시립미술관의 기획전에 참가한 한희원 작가와의 대화를 비롯해 해설이 있는 문화마실(하정웅미술관, 10월), 문화마실-소장가와의 대화(G.MAP, 4월) 등 창작자와 향유자를 잇는 다양한 현장을 마련한 것이다. 이 가운데 ‘백남준:사람은 10,000마일’을 주제로 백남준의 삶과 예술을 조명한 미디어아트 특별전이 열린 G.MAP의 문화마실은 미술관회가 공들여 기획이었다.
“지난해 하정웅미술관(광주 농성동 소재) 인근의 직장인들을 전시장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해설이 있는 문화마실’을 점심시간에 진행했어요.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올까,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많은 50여 명의 직장인이 참석했어요. 인상적이었던 건, 상당수가 사무실에서 도보로 5분 거리인 하정웅 미술관에 처음 왔는 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며 자주 들르겠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미술관회가 나아가 할 길이 아닐까 싶어요.”(김영희)
/글=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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