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은퇴는 또다른 기회
꿀벌 수의사 김용환·기혜영씨 부부
부부가 나란히 수의학 박사 학위 취득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 30여년간 근무
지난해 연말 퇴직 열흘만에 동물병원 개소
호남권 양봉농가 찾아 꿀벌 질병 진단·치료

“남들이 아직 도전하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싶었습니다.”
은퇴 이후를 오히려 새로운 시도의 ‘기회’로 보는 이들이 있다. 최근 명예퇴직을 하고 ‘꿀벌 수의사’로 변신한 김용환(59)·기혜영(여·57)씨 부부가 바로 그들이다.
은퇴 이전에는 식솔이나 재정적인 이유 등으로 선뜻 도전하지 못했지만, 은퇴 이후로는 걱정을 덜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명예퇴직한 이들 부부는 지난 1월 광주시 북구 신안동에 꿀벌 전문 동물병원을 열었다.
꿀벌 수의사는 이름 그대로 양봉 농가를 찾아가 꿀벌 질병을 검사하고 치료해주는 일을 전담하는 수의사다.
김씨 부부는 나란히 수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난 30여 년 동안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 등에서 함께 일했다.
이들이 퇴직 이후를 고민하게 된 것은 5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의사 후배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일, 공익적이고 지구를 살리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생각은 김씨가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장을, 기씨가 광주시 보건환경연구원 서부 농수산물검사소장을 맡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결국 “원하는 일을 하려면 일찍부터 도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김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31일 한날한시에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단 열흘 만에 동물병원을 개소했다. 김씨 부부가 연 꿀벌 전문 동물병원은 전국에서 세 번째 사례이자 광주·전남에서는 유일한 곳이다.
김씨는 “다른 동물병원을 열 수도 있었지만, 다른 가축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꿀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었다”며 “꿀벌은 지구 생태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물로서 인류가 지켜나가야 할 대상이라는 점에서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질병이 발생한 양봉농가를 찾아 호남권 곳곳을 누비고 있다. 지금까지 들른 출장지만 해도 완도·구례·순천·나주부터 전북 진안·고창까지 다양하다.
30년 넘는 수의사 경력을 가졌음에도 김씨 부부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소·오리·돼지 등 가축에 대해 국가재난방역 중심으로 일했으나, 직접 양봉농가를 찾아가 진단과 치료를 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새롭다는 것이다.
꿀벌 질병을 진단할 때는 수의사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김씨 설명이다.
소, 돼지 등 가축은 질병 증상을 눈으로 쉽게 확인할 수 있으나, 꿀벌은 개체 수가 많고 한 마리씩 따로 진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더구나 양봉농가 주변에 시기별로 어떤 꽃이 피고 어떤 질병을 옮길 가능성이 높은지, 바이러스나 진드기 등 해충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적 요인이 있는지 등 다각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김씨 부부는 한술 더 떠 “꿀벌뿐 아니라 사람도 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농장주가 벌에게 약제 등을 언제 어떻게 투입했는지, 농장주가 최근 양봉 작업 중 실수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김씨 부부의 몫이라는 것이다.

김씨는 “하루는 ‘벌이 땅을 기어 다닌다’는 의뢰가 들어왔는데, 큰 질병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고 있었다”며 “확인해 보니 전날 채밀(꿀 수확)을 하면서 벌이 먹을 최소한의 꿀을 남겨두지 않고 전부 수확해버려 벌이 배가 고파서 땅을 기어 다닌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기씨도 “지난 3월에는 구례군의 한 농가에서 벌이 떼죽음을 당했는데, 차근차근 되짚어보니 농장주가 지난해 가을에 해충 방제약을 너무 많이 뿌려 약해진 벌이 겨울을 나지 못한 것이었다”며 “벌은 굉장히 정직한 생물이다. 매일 정해진 루틴에 따라 관리를 해줘야 하고, 하루 이틀 ‘알아서 잘 살겠지’하고 내버려 뒀다간 벌이 눈에 띄게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힘든 점도 있다. 많게는 하루 400여㎞씩 운전을 해야 할 때도 있는 데다 양봉농가가 산 중턱 인적 드문 외진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 육체적으로 힘든 점도 많다고 한다.
그동안 공무원 생활을 해와 몰랐던 자영업자들의 세금 문제부터 행정적 등록 관계, 하물며 병원 청소까지도 직접 해야 하니 “공직생활보다 더 어렵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는 것이다.
더구나 꿀벌 동물병원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보니 매일같이 ‘강아지·고양이를 치료해달라’는 전화가 4~5통씩 병원으로 걸려온다고 김씨 부부는 웃었다.
개업 초기라 병원으로 직접 의뢰가 들어오는 사례는 아직 손에 꼽아 수입은 많지 않다. 대신 김씨 부부는 농림부 ‘양봉 농가 꿀벌 질병 관리 지원사업 자문단’에 광주·전남 지역 유일한 꿀벌 수의사로 이름을 올리고 전남 곳곳을 돌고 있다.
김씨는 “아직 태동기인 만큼, 투자 단계라고 봐야 한다. 우리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체계를 만들어 놔야 추후로도 연계 사업이 생기고 꿀벌 수의사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불과 4~5년만 지나면 꿀벌 수의사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기술력을 요구하는 농가가 늘게 될 것”이라고 자부했다.
은퇴를 고민하는 ‘예비 신중년’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막막한 인생 이모작을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부부끼리 힘을 합쳐 함께 도전하라는 조언이다.

김씨 부부는 현장에서 ‘환상의 팀워크’를 보여주고 있다. 양봉 농가를 찾아가 한 사람이 꿀벌을 모으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조사 내용을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어주는 등 현장에서 합이 척척 맞을 뿐 아니라 장거리 운전과 행정서류 작성 등 서로 도우며 많은 의지가 됐다는 것이다.
김씨는 “부부가 함께 일을 하니까 힘든 것도 반이 된다”며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는 퇴직 후에도 아내와 함께 같은 일을 하기로 한 것”이라고 웃었다.
김씨 부부는 “화려하고 멋있는 일보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100세, 120세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퇴직 전부터 끊임없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고민하고, 생각한 덕분에 퇴직 시기가 닥쳤을 때 잘 대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어 “앞으로도 부부가 함께 건강을 지키면서 전문직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하고, 인정받는 수의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웃어 보였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심야에 금은방 침입해 수천만원 상당 귀금속 훔친 20대 여성 경찰에 붙잡혀
금은방 유리창을 깨고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2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광주광산경찰은 15일 금은방을 턴 A(여·22)씨 특수절도 혐의로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A씨는 전날 새벽 3시 30분께 광주
kwangju.co.kr
여수국가산단 내 업체에서 또 유해물질 누출…인명피해 없어
여수국가산단 내 철강제조업체에서 한달여만에 또 유해물질이 누출됐다. 15일 여수소방에 따르면 전날 오전 6시께 여수시 화치동 여수국가산단 내 철강 원료를 가공하는 A업체에서 유해화학물
kwangju.co.kr
'유연재기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주시 동구, ‘뉴진스 데뷔 축하 카페’ 저작권 문제로 결국 취소 (0) | 2024.07.20 |
---|---|
여순사건 10%도 못 밝혔다…진상규명 특별법 연장을 (0) | 2024.07.17 |
광주·전남 교원 성범죄 ‘기가 막혀’ (1) | 2024.07.12 |
‘대·자·보 광주’ 문화전당~광주천 서석교 보행로 확장 (0) | 2024.07.12 |
‘5·18 다크투어리즘’ 관광은 많고 역사·교훈은 적다 (0) | 2024.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