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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리뷰] ACC, SF연극 ‘대리된 존엄’…임신 대리와 존엄의 문제, 실험적 서사로 다뤄

by 광주일보 2024.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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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과학·윤리의식 등 이슈 제기
미래 어느 시점의 우리 사회 모습

지난 12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SF연극 ‘대리된 존엄’은 출산과 관련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이다. <ACC 제공>

금전적 이득을 보장받고 임신과 출산을 대리하는 행위는 과연 존엄을 훼손시키는 일인가?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삶의 편리는 윤리의식과 충돌할까?

지난 12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전당장 이강현) 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대리된 존엄’은 출산과 관련 다양한 생각을 하게 했다. 대리 출산과 관련 어디까지 개인이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은 타인의 행복 추구권을 침해할 수 있는지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지역 소멸, 인구 감소 등과 맞물린 출산 문제는 많은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이자 국가적 화두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과 법 테두리 밖 출산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출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은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대리모를 주제로 한 예술작품은 다양한 장르에서 다뤄져왔다. 지금까지는 생명 윤리문제, 아이의 정체성 문제 등이 일반적인 주제였다. 그러나 이번 작품 ‘대리된 존엄’은 대리모 산업이 일반화된 미래 사회를 전제로 대리모 출산에 대한 윤리 논란보다 인간의 존엄도 대리될 수 있는지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연극은 ACC 최초 SF 첫 번째 시리즈로 기획됐으며 ‘ACC 공연 레지던시 사업’을 토대로 진행됐다. 문정연 작가가 글을 썼고 최여림 연출가가 연출을 맡았다.

예술적 상상력을 극대화한 SF연극이라 다소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스토리 라인이 분명했다. 또한 흡입력 있는 대사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인물들 변신을 끌어내는 연출 등이 맞물려 주제의식이 깊이있게 구현되었다.

가장 낮은 등급인 8구역 출신인 앨리스는 가족들을 돕기 위해 국가 최고기관인 왕립대리모센터에 입소한다. 그녀는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에서 최하 등급 구역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다. 8구역 출신 가운데는 대리모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발탁되는 것은 어렵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 경제력 외에도 자신의 외모, 성격, 성실성 등 다양한 요인이 평가받기 때문이다.

앨리스는 특유의 성실성과 눈에 띄는 외모로 무혈왕국이 운영하는 왕립대리모센터에 입소한다. 그녀는 선진국 전문직 부부에게 자신이 선택됐다는 사실에 기쁨과 함께 자부심을 느낀다.

무혈왕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왕립대리모센터를 운영할 만큼 중요한 시설이다. 흥미로운 점은 무혈왕국에는 사설대리모센터도 있으며 인공자궁도 하나의 출산일 만큼 선택지가 자유롭다. 그러나 경제력과 사회적 배경 등에 따라 대리모 계급도 분류된다. 더욱이 인공자궁과 대리모가 성행하는 선진국 상류층사회에서 부부들이 아이들을 낳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라고 여긴다는 내용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작품을 보다 보면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고 주인공은 무대 위에 던져질 뿐이다’라는 셰익스피어 명언이 환기된다. 무대 위에 오른 인물은 저마다 인생을 살며 대리 출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표출한다.

작품은 모두 7명 배우가 40여 개 배역을 담당한다. 한 배우가 대여섯 개 배역을 감당해야 하기에 만만찮은 내공이 없이는 소화하기 힘들 것 같다. 전체적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지문리더가 군데군데 진행 방향을 설명하며, 그 또한 다른 배역을 소화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공연은 거의 무대가 바뀌지 않은 채 지문과 간단한 소품, 연기만으로 110분가량 진행된다.

인공자궁으로 아이를 갖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사회에서 부자들은 취향에 맞게 대리모를 선택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색적인 삶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의 감정과 부딪히며 연극이라는 작품에 스며든다.

아기와 교감하며 임신 상태를 보내던 앨리스는 무사히 출산하게 된다. 선진국 부부에게 아기를 보내기 직전, 대리모 산업을 반대하는 이들이 테러를 일으키고 왕립센터는 큰 혼란에 휩싸인다.

작품은 오늘날 출산율 저하와 결혼 기피 등으로 맞물린 사회 풍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임신 기간이 경력 단절이 되는 사회, 모든 것이 자본으로 계수되는 사회에서 이번 작품 ‘대리된 존엄’은 미래 어느 시점에 닥칠지 모를 우리 사회의 모습을 선행해서 그리고 있는 것 같다.

한편 최여림 연출가는 “이 작품은 대리모 시장을 고발하거나 비판적인 시선을 전달하는 것에 본질적인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사회의 욕망이 개인를 집어삼키는 양상이 더욱 거세어지지는 않을까’, ‘자신의 삶의 모양을 스스로 돌아보고 선택하는 것이 더 쉬워질까’ 와 같은 질문들을 나누고 싶었다”고 전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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