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삼월, 남도가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매화 삼총사’ 활짝
명품 탐매여행의 시작 ‘구례 화엄사 화엄매’
향기롭고 기품있게 ‘순천 선암사 선암매’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장성 백양사 고불매’
봄기운이 밀려오는 3월이면 슬슬 춘곤증이 생기고 괜히 입맛까지 깔깔해진다. 이럴 때는 비타민D가 풍부한 봄 햇살을 맞으며 봄나들이 가는 것만큼 좋은 보약이 없다. 여기에 고운 꽃님까지 더해지면 금상첨화. 3월의 첫 꽃길을 연 매화를 보러 갈 때가 된 것이다. 춘삼월이 되자마자 남도 곳곳에서 매화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데 그 중 자타공인 인정하는 ‘남도 3매’가 있다.
올해 남도의 최고 매화 자리를 차지한 주인공은 구례 화엄사에 핀 홍매화이다. 해마다 전국에서 수많은 사진사들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 홍매화의 자태를 담기 위해 지리산 화엄사를 찾는데 올해는 그 수가 곱절이 됐다. 국가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구례 화엄사 화엄매’라는 근사한 공식 명칭까지 얻었다. 지리산을 대표하는 천년고찰 화엄사는 국가유산 사적지답게 국보 5점과 보물 9점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산의 보고인데 이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례 화엄사 매화(들매화)’에 이어 화엄매까지 천연기념물이 되면서 큰 경사를 맞았다.
화엄사 화엄매는 붉은 빛을 띄는 홍매화이다. 어찌나 꽃이 검붉은지 흑매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이다. 웅장하고 우아한 가람에 핀 매화답게 고고한 기품과 화사한 매력이 넘치는 것이 가히 호남 최고의 매화나무로 손색이 없다. 홍매화가 화엄사에 뿌리내린 지는 3백여 년 남짓. 다른 고목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토종 매화나무로 오랜 세월을 지내오며 줄기와 가지가 굴곡을 만들면서 학술적 가치도 높다. 올해 화엄매 꽃마중을 계획했다면 조금 서둘러야 한다. 제주부터 남해안까지 이미 한 달이나 일찍 봄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면서 예년 같으면 3월 중순 경에나 만개하던 화엄매도 개화시기가 2주 가까이 빨라졌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른다.
빨라진 개화시기 때문에 해마다 열리는 ‘홍매화·들매화 사진대회’가 지난해보다 2주일이나 빨리 시작됐다. 촬영 기간은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23일까지, 오전 7시부터 밤 8시 30분까지 가능하다. 수상작은 다음 달인 4월 23일에 발표될 예정이다. 구례 화엄사에서는 화엄매를 사랑하는 중생들을 위해서 화엄매 사진을 홈페이지에 실시간으로 올려 친절하게 개화시기를 알려주고 있다. 화엄매는 3월 한 달 동안 피고 지기를 3백여 번. 붉디붉은 홍매화의 맑고 청아한 기운과 함께 속세의 번뇌를 씻어보는 건 어떨까.
남도 3매의 넘버 투 매화는 순천 선암사에 있는 선암매이다. 선암사 경내에는 수백년 된 매화나무 5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이들을 통틀어 선암매라고 부른다. 이들 중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에 핀 분홍빛이 어여쁜 홍매화 한 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선암사로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승선교를 지나면 선암사 일주문이 나오는데 일주문에 들어서자마자 대웅전 앞마당에 핀 선암매들이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선암사 백매화는 국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나무 중에 꽃송이 수가 가장 많아서 풍성한 자태를 뽐낸다. 만개시기에 찾아가면 팝콘나무처럼 가지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새하얀 백매화를 원 없이 구경할 수 있다. 특히 순천 선암사에 피는 선암매들은 향이 진하기로 유명해서 꽃이 보이지 않아도 향기만으로 꽃이 피었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매화가 피는 시기에는 선암사 구석구석까지 매화 꽃길이 이어지는데 원통전과 각황전 사이의 돌담길이 선암매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호젓한 돌담길 양옆으로 화사한 매화 꽃터널이 만들어지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순천 선암사에 갔다면 바로 옆 금둔사에 잠시 들러보자. 금둔사는 낙안읍성민속마을이 있는 금전산 중턱에 터를 잡은 작은 사찰이다. 조선 중종 때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지만 규모가 크지 않아서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자신의 능력을 숨긴 채 무명의 삶을 즐기는 은둔 고수처럼 금둔사의 매화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가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금둔사 경내에는 토종 매화 백 여 그루가 뿌리내렸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매화는 납월매이다. 납월매(臘月梅)라는 이름에서 ‘납월’은 음력 섣달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만큼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일찍 피어나는 매화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빨리 피는 매화로 알려진 거제도 구조라분교의 초당매 다음으로 꽃망울을 터뜨린다. 납월매 여섯 그루에는 각각 일련번호를 매긴 명찰이 붙어 있는데 전국을 다녀 봐도 매화나무에 명찰을 붙여 놓은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남도 매화 삼총사의 마지막 주인공은 장성 백양사에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양사의 보물로 이름부터 고귀한 고불매이다. 백양사 우화루 곁에 뿌리내린 고불매는 경내에 하나뿐인 홍매화로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남다른 자태를 뽐낸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백양사는 원래 현재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100m 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863년 대홍수로 건물이 소실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그 때 옛 대웅전 뜰에 있던 홍매와 백매를 옮겨 심었는데 안타깝게 백매는 고사해 사라지고 홍매만 살아남았다. 이후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고불총림을 결성하면서 고불총림의 기품을 닮은 홍매를 고불매로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밑동에서 세 줄기로 갈라져 나온 고불매는 고목의 기품과 함께 아름다운 색과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인데, 전국적인 스타 매화답게 해마다 봄이 되면 고불매가 언제 피냐고 묻는 문의전화로 백양사 종무소의 전화가 불이 날 정도라고 한다. 백양사 고불매는 비교적 높은 지대에 있다 보니 개화시기가 조금 늦은 편인데 올해는 3월 중순부터 만날 수 있다.
예부터 시서화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추운 겨울철의 세 벗이라는 뜻을 지닌 세한삼우(歲寒三友)는 한겨울을 견뎌낸 소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매화나무를 일컫는데 흔히 한 폭의 그림에 담아 송죽매라고 부른다. 여기에 매란국죽으로 통하는 사군자(四君子)는 덕과 학식을 갖춘 사람의 인품을 닮았다고 하여 난초, 국화, 대나무, 매화가 포함된다. 세한삼우와 사군자에 모두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매화이다. 꽃말 그대로 고매한 기품과 품격을 보여주기에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부끄러움이 사라진 시대, 기품과 품격을 갖춘 어른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요즘이다. 거센 북풍한설을 꿋꿋이 이겨낸 매화를 보며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이 많아지기를.
/글·사진=정지효 작가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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