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진강과 붉은 철쭉의 향연
17번 국도 따라 5km 철쭉길 ‘화양연화’
수박향 나는 은어·고소한 참게 ‘섬진강 봄밥상’
일년 중에 가장 산책하기 좋은 때가 4월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살랑거리는 봄바람도 좋고, 꽃이 피고 진 자리에 나는 연초록 잎사귀들까지 멋진 길동무가 되어준다. 겨울 지나 봄이 오고, 또 금세 여름이 찾아오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꽃피는 봄날을 이렇게 떠나보내기가 아쉬운 사람들이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올해 봄꽃 구경을 못해서 속상하다면 지금 곡성으로 떠나보자.
곡성은 지리산과 섬진강을 품고 있는 복 받은 땅이다. 특히 섬진강은 벚꽃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고 철쭉으로 봄을 완성하는 봄꽃 종합선물세트 같은 강이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반짝이듯 맑고 깨끗한 섬진강 물길을 따라 불타는 듯 화려한 철쭉길이 제철을 맞아 꽃망울을 터트렸다. 최근 따뜻해진 기후 탓에 갈수록 봄꽃 개화시기가 당겨지면서 우물쭈물 다가 꽃구경을 놓치기 십상이지만 철쭉은 다르다. 다년생 꽃나무답게 한번 피어난 철쭉의 향연은 족히 2주일은 넘게 이어진다.
발걸음도 가볍게 곡성에 도착했다면 철쭉길을 찾아 헤맬 다닐 필요는 없다. 곡성 섬진강변을 따라 이어진 17번 국도 5km의 길이 온통 철쭉 꽃길이다. 곡성 철쭉길은 곡성 9경 중 한 곳으로 섬진강의 쪽빛 물결과 색색의 철쭉이 보색 대비를 이루면서 극강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어디에서 시작하든지 멋진 철쭉로드를 즐길 수 있지만 좀 더 여유롭게 꽃길을 만끽하고 싶다면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출발해 침곡역과 송정마을을 거쳐 가정역과 출렁다리를 건너 다시 돌아오는 회귀 코스가 좋다. 이곳의 철쭉들은 탁 트인 강변에 자리하고 있어서 따뜻한 봄햇살을 충분히 받고 큰 탓에 꽃이 크고 색이 진하기 때문이다.
철쭉길이 펼쳐진 17번 국도는 강과 도로, 그리고 철도가 함께 달리는 국내 유일의 장소이다. 덕분에 철쭉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도보길과 함께 자전거, 레일바이크, 증기기관차, 자동차 드라이브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면 된다. 강을 따라 조성된 철쭉길은 강쪽으로 자전거길, 중간은 자동차 드라이브길, 가장 바깥쪽으로는 기찻길이 나란히 이어지는데 서로 단차가 있어서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색다른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증기기관차나 레일바이크를 경험하고 싶다면 운행 시간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좋다.
곡성 철쭉길이 펼쳐진 섬진강에는 숨겨진 명소가 많다. 그 중 곡성읍과 가까운 침실습지는 말 그대로 신비한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오곡면과 고달면 일대를 흐르는 섬진강 구간으로 버드나무와 갈대숲 그리고 크고 작은 섬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수달부터 흰꼬리수리, 삵 등 멸종위기 동물의 서식지로 천혜의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제22호 국가기정습지로 지정된 곳이다. 특히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봄날 새벽에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면서 환상적인 일출을 선사하는데 전설 속의 한 장면처럼 상서로움마저 감돈다.
어머니의 강이라는 별명처럼 섬진강은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어준다. 이맘때 섬진강을 찾았다면 참게와 은어 요리를 지나칠 수 없다. 맑은 물에서만 사는 참게와 은어는 섬진강이 아직 건강함을 입증해 주는 산증인이다. 섬진강이 키운 참게와 은어는 비슷한 점이 많다.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알을 낳기 위해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은어와 바다와 인접한 하구에서 태어나 다시 섬진강으로 돌아오는 참게는 섬진강의 대표 별미이다. 음력 2월 이후에 잡히는 참게는 ‘황소가 밟아도 안 깨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속이 꽉 차 있어서 참게장, 참게탕, 참게수제비로 즐길 수 있다. 특히 들깨를 갈아 넣고 된장을 풀어 국물을 낸 참게탕은 담백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참게만큼 맛있는 은어는 올해 천만영화로 등극한 ‘파묘’에 등장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 맛이 가히 천하일미이다. 1급수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기 때문에 섬진강 이외에는 경북 봉화나 영덕 정도 가야 맛볼 수 있는데 그 중 섬진강 은어가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허영만 작가의 만화 <식객>에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은어는 생선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고 상큼한 수박향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민물고기이지만 맑은 강물의 이끼만 먹고 살 정도로 깨끗해서 고급식재료로 통한다. 예전에는 은어가 돌아오는 철이면 섬진강이 온통 은빛으로 물들 만큼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은어의 수가 많이 줄어서 더욱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수박향 나는 은어는 신선한 회, 튀김, 구이로 즐길 수 있는데 무엇보다 은어구이 맛이 기가 막힌다. 은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 등으로 소를 만들어 채운 뒤에 구워내면 향긋한 냄새가 십리 밖까지 퍼져 나갈 정도라고 한다. 특히 은어는 비타민이 풍부해서 시력과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동의보감에 따르면 성질이 온순하고 독이 없어서 위를 튼튼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그야말로 봄날 최고의 보양식인 셈이다. 봄의 한복판에 들어서는 4월, 화양연화를 맞은 봄의 철쭉길을 따라 몸도 마음도 충만하게 채워보자.
/글·사진=정지효 기자 1018hyoh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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