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러브, 데스+로봇’ 앤솔러지 마지막 단편
요부 세이렌의 ‘마법’ 과 기사도의 ‘운명’
클림트의 황금빛 ‘키스’ 같다. 몸을 흔드는 무희 옆에 다가가 고개를 기울이고 싶다.
그러나 찬연한 입맞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춤사위다. 강물 속에서 치명적 무도를 펼치는 저 기묘한 존재는 무엇일까. 인간의 욕망이 세상에 현현한다면 이같은 모습이리라.
고작 20분 남짓 러닝타임으로 오랫동안 뇌리에 각인된 영화가 있다. 넷플릭스 단편 SF애니메이션 앤솔러지로 만들어져 상영 중인 ‘러브, 데스+로봇’ 시즌3 마지막 작품, ‘히바로(Jibaro)’다.
작품은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신화를 연상시킨다. 남미 푸에르토리코의 깊은 열대우림을 모험하던 기사단 앞에 온몸을 금색 비늘로 장식한 무희가 나타난다. 강물 속에서 선보이는 유혹의 춤과 노래에 홀려 성직자, 기사 등은 투신한다. 요부 세이렌의 ‘마법’ 속에서 유일하게 청각장애를 앓던 주인공만이 의도치 않게 살아남았다.
세이렌은 욕망에 초연한 기사가 곤욕스럽다. 아니 ‘멋져’ 보인다. 그동안 자신의 노래로 현혹하지 못했던 남성은 없었지만 단칼에 유혹을 뿌리치는 기사야말로 어딘가 달라 보였던 것.
사실 그는 귀가 들리지 않아서 세이렌의 노래에 미혹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사랑의 황홀경 앞에서 진실 따위는 중요치 않다. 밤이 되자 기사가 잠든 그루터기 아래로 찾아가 몰래 그를 안아 봤으나, 욕망은 쉽사리 성취되지 않는다.
신화 속에서 선원들을 유혹하던 반인 반어가 오히려 자신의 무기였던 욕망 앞에서 피학당하는 모습은 새롭다. ‘사랑에 눈먼 세이렌’과 ‘탐욕에 눈멀어버린 기사’는 나름의 공통분모를 갖고 비극적인 서사를 썼다. 무성영화였음에도 몸의 언어는 수많은 소리들을 만들어 냈고, 대사 하나 없이도 긴장감 넘치게 서사를 이끌어 간다.
히바로는 아름답다.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나 고견 따위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을 넘어서 그저 수려한 영상미에 잠겨볼 수 있다. 탐미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주제의식이나 정치성 등을 엮어 해석하는 것은 때론 신물이 난다. 화려한 보석과 장신구를 걸친 무희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눈과 귀를 즐겁게 했고, 기사와 여인의 모습은 에곤 쉴레의 화폭을 그대로 옮겨온 듯해 육체미가 넘치고 퇴폐적이다.
물론 작품을 15~17세기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 콩키스타도르와 야만인(히바로)의 구도 따위로 읽어볼 수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서구 열강이 소위 ‘야만’이던 에콰도르 원주민 등을 괴물로 은유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이 필수불가결하다. 또 작중 강, 물, 인어 등 자연으로 타자화된 여성을 남성성(기사)이 정복하는 서사라는 해석 등도 가능하다. 그러나 히바로는 모든 논리적 해석의 가치를 무용하게 만들 정도로 작품 내재적인 미학성을 필두에 둔다.
애초에 알베르토 미엘고 감독이 작품명의 유래에 대해 “큰 의미 없이 숲 속 어딘가의 기사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는데, 부족처럼 보였으면 하는 단어를 선택했을 뿐이다”고 언급했던 것을 참고해봐도 매한가지다. 의미론이나 외재적 해석은 히바로가 추구하는 ‘미’라는 전략 앞에서 무력할 뿐이다.
말미에서 두 주인공은 각기 다른 욕망을 가지고 폭포수 아래서 만난다. 남녀가 뒤엉켜 에로티시즘이 절정에 달할때 쯤 이들의 마지막 춤은 배신으로 얼룩지고 하트 모양 호수는 핏빛으로 물든다. 세이렌은 생살에 박혀 있던 황금 비늘을 기사에게 모두 쥐어 뜯기고 절규한다.
그녀의 피가 묻어있는 강물을 마시자 기사는 불행인지 천운인지 귀가 트인다. 풀벌레 소리, 바람이 잎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세이렌의 목소리까지 들리면서 작품은 죽음의 무도로 막을 내린다.
영상미를 빼놓고 히바로를 논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세이렌의 움직임을 CG기술로 연기한 댄서 사라 실킨의 몸짓은 압권. 그가 연기한 다른 필름 ‘L.A. Contemporary Dance’ 등에서도 볼 수 있지만, 실킨은 유수와 같은 움직임으로 슬픔을 담담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같다. 이러한 현실 속 댄서의 몸짓이 3D매핑과 AR, VR 등 CG 기술을 매개로 영상에 그대로 재현돼 ‘애니메이션 필름’의 지평을 넓혔다.
인간에게 내재된 야만성 앞에서 모두가 ‘히바로(아만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강물 속에 수장된 시체무덤 위로 그저 기사 한 명이 더 쌓였을 뿐이라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배 기둥에 묶여 있던 오디세우스를 조우했던 세이렌 키르케와는 또다른 강렬함이다. 히바로의 날개 없는 세이렌은 죽음과 사랑의 밀어를 동시에 전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인지 더 ‘인간적’이고 비련했다.
오늘날 경보음 사이렌의 어원은 세이렌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경고와 향유의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한 순간 비극은 예고돼 있었다.
‘러브, 데스+로봇’ 시즌 3에는 ‘히바로’ 등 총 9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으며, 현재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시즌4 제작도 예정돼 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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