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부터 전해온 ‘장도 문화’ 계승의 보고
지난 2006년 1월 개원…국내 유일 장도박물관
3대가 이어 ‘장인의 혼’ 담은 장도 130여점 전시
영화·드라마 협찬…대통령 외국 방문 때 선물로도
‘장도(粧刀)의 정신은 변하지 않는 마음이다. 도에 깃든 애국심과 효심, 지조가 모두 일편심에 들어 있는 것이다. 몸에 지니며 일상의 벗이 되었던 장도에는 바르게 살고자 하는 조상들의 멋과 의지가 깃들어 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광양시 광양읍 매천로에 위치한 광양장도박물관에 ‘장도의 정신’을 강조한 문구가 걸려 있다. 장도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닌 선조의 혼이 담겨 있는 소중한 유산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국내 유일의 장도박물관인 광양장도박물관은 지난 2006년 1월24일 개관해 삼국시대부터 전해지고 있는 한민족의 찬란한 장도 문화를 외롭게 지켜오고 있다.
한 자루의 장도가 탄생하기까지 자르고, 갈고, 두드리고, 불에 달궜다가 물에 담그기 등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며, 총 177가지의 공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공정의 마지막은 칼날인 도신(刀身)에 장인의 혼이 담긴 ‘일편심(一片心)’이라는 글을 새기면서 마무리된다.
장도전수교육관인 광양장도박물관에는 이처럼 힘든 장도 제작의 맥을 3대가 이어 가고 있어 ‘전통의 무게’가 느껴진다. 제1대 고 박용기 옹에 이어 2대 박종군 현 박물관장, 3대 박남중·박건영 씨가 주인공들이다. 고 박용기 옹은 65년여 동안 장도 제작에 힘써오다 지난 1978년 중요무형문화재에 지정됐으며, 급기야 2012년에는 ‘문화훈장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아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장인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박종군 관장도 2011년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돼, 스승 생전에 제자도 문화재에 지정된 ‘국내 1호’의 영예를 안았다.
박 관장은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장도 제작에 열정을 쏟으셨으며, 장도의 깊은 뜻을 후손들에게 알리고자 박물관을 생각하게 됐다” 면서 “이 박물관은 아버지가 전 재산을 국가에 기부함으로써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건립하게 됐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열정을 어렸을 때부터 지켜봐 온 그는 주저하지 않고 아버지의 뒤를 이었으며, 이제는 자식들도 똑같이 자신의 뒤를 밟게 된 것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해 전공인 불교미술에서부터 서양화·동양화까지 폭넓은 스펙을 쌓아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박 관장은 제2대 박물관장으로서 보다 체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장도 문화의 새길을 열어가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광양장도박물관은 2층 건물에 3개의 전시관을 갖추고 있으며, 총 1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실에 나오지 못한 채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도 150여점에 이른다고 한다.
1층 전시실에는 박 관장과 두 아들의 작품 60여점이 전시되고, 2층 전시실에는 박 옹이 만든 작품 70여점과 사용했던 장도 제작 도구 등이 진열돼 있다. 특히 70년대 중반 박 옹과 어린 박 관장이 찍힌 사진과 함께 무형문화재를 소개하는 내용이 담긴 색바랜 초등학교 사회과 탐구 책도 있어 눈길을 끈다.
그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중동 방문 때 아랍에미리트연합 왕세자와 카타르 국왕에게 선물한 ‘은장쌍용문지휘도’와 ‘금은장환용문갖은맞배기도’에도 ‘일편심’이 새겨 있다.
또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일기에서 ‘왕이 신하들에게 칼자루를 옥으로 만들고 장식은 금과 은을 사용해 만들라’로 지시하는 부분을 읽고서 만든 ‘백옥금은장환갖은원형도’도 박 관장의 혼이 담겨 있다.
이 밖에 2021년 삼성호암미술관-‘야금:위대한 지혜전’에서 국보급 유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전시되었다는 ‘은장용문갖은육모도’, 숙종실록에서 일본 사신이 훔쳐 갔다는 숙종대왕의 대모장도를 모델로 한 ‘금은장환갖은사각대모첨자도’ 등도 전시돼 있다. 숫고래의 생식기로 만들었다는 ‘만파식장도’라는 이색적인 장도도 한 켠에 있다. 각 작품의 사연을 듣고서 더 가까이 들여다 보니 마치 흥미있는 시간여행을 떠난 듯 하다.
이처럼 국내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박 관장은 지금보다 더 뛰어난 작품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나날이 발전하는 박물관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 아울러 문화유산 계승의 길을 가고 있는 장인들이 제작과 기술 전수에 전념할 수 있도록 안정된 제도적 환경이 조성되길 바라고 있다.
‘철의 고장’에서 꼿꼿하게 나아가고 있는 장도 문화의 계승이 멈춤 없이 계속 이어져 가길 기대한다.
/글·사진=서승원 기자 swseo@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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