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극영화 ‘초련’ 시사회
희망문화컴퍼니 제작, 이정국 감독
광주영상미디어클럽서 활동
순수 아마추어 광주시민 위주 캐스팅
‘무등산국립공원 정거장’을 향해 1187번 버스가 산비탈을 오른다. 광주를 누비던 녹색 버스가 스크린에 나오자 반가움도 잠시, 화면은 이내 무등산을 배경으로 한 노을로 채워진다. 풍광은 진경산수 같기도 했으며, 한폭의 수채화 느낌도 묻어났다.
20일 저녁 전일빌딩245에서 열린 단편 극영화 ‘초련’ 시사회. 영화는 희망문화컴퍼니(대표 임준형)가 제작했으며 감독은 이정국이 맡았다.
이날 시사회에서는 무등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산 중턱 갈대들의 서걱거리는 소리 등 무등산의 ‘속살’이 오롯이 스크린에 담겼다. 관객들 가운데는 등산복 차림을 한 이들도 있어 영화 소재인 ‘무등산’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빛고을의 상징 무등산은 광주 역사 그 자체이며, 무궁무진한 문화자원을 소유한 명산이다. 우리나라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됐으며 올해 초에는 국립공원 무등산권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첫 재인증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월에는 57년만에 정상부가 개방돼 시민들 품으로 한걸음 더 다가왔다.
“원래는 장편을 만들려 했다가 단편으로 방향성을 바꿨습니다. 우리 지역에 ‘무등산’처럼 아름다운 선산이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콤팩트하게 단편을 제작했어요.”
이날 시사회에서 만난 이정국 감독은 기획 의도를 이렇게 말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세종대 영화예술학과 교수를 역임한 그는 장편 ‘편지’로 청룡영화제 최고흥행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감독은 광주와 인연도 깊다. 5·18을 초점화한 단편 ‘세 남자의 오월’은 현재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이다. 지난 21년 선보인 장편 ‘아들의 이름으로’는 5·18민중항쟁 40주년 공식 기념작으로 선정됐다. 광주의 5월 등에 천착해 온 연장선에서 이번에는 무등산을 모티브로 한 작품을 만들게 됐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순수 아마추어 광주 시민들을 캐스팅해 영화를 촬영했다. 광주영상미디어클럽에서 활동하며 영화에 관심있는 시민들을 섭외거나, 공개오디션을 통해 주연배우를 선발한 것.
이번 작품의 PD이자 작중 ‘극단 감독’ 역으로 출연한 임준형은 “광주의 어머니와 같은 무등산은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며 “이번 작품도 영화 애호가뿐 아니라 광주 시민들에게도 신선한 영감은 물론 자부심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작품의 초반은 일반적인 ‘사랑’ 이야기와 유사했다. 그러나 배경을 무등산으로 한 덕분에 신파조의 느낌을 희석하는 효과가 있었다. 특히 산 중턱에서 내려보는 광주의 전경, 드론 캠으로 촬영한 입석대의 주상절리는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영화는 작은 극단에서 햄릿 역을 맡은 주인공 명준기가 버스에서 우연히 희귀병 ‘뇌신경 인플레’에 걸린 이무진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제목처럼 초련(初戀·첫사랑)에 물들어가는 젊은 남녀의 풋풋함부터 중견 배우들의 열연은 장불재와 입석대에 핀 홍매화 등과 어울려 잔잔한 울림을 선사했다.
감상 포인트를 묻자 임 PD는 작품 속 지역적 상징들을 찾는 재미를 꼽았다. 가령 여배우의 극 중 이름을 ‘무진’으로 설정한 것은 무등산의 옛 명칭(백제·무진악)에서 유래했다는 식이다.
시사회장을 나서며 옛 전남도청 뒤편 저 멀리 자리한 무등산을 잠시 바라봤다. 대설주의보가 발효될 만큼 눈발이 많이 날리는 저녁이라 그 자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희미하게나 설산(雪山)이 되어가는 무등의 모습은 영화 속 아련한 첫 사랑이 현현한 듯 했다.
한편 영화 ‘초련’은 광주시와 광주문화재단의 광주형 문화메세나운동 기부금 매칭 지원사업으로 지원받아 제작됐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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