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산단 구조 고도화·신산업 중장기 투자 절실
일반산단 31곳 ‘반값 분양가’ 등 파격 조건 내걸어
올해 미분양률 7.2% 전국 평균 2배 넘어
고질적 인력난·기존 특화업종 쏠린 산업구조 한계
입지 규제 완화 ‘일자리 거점’ 등 산업입지 정책 확대를
변변한 뿌리 산업 기반이 부족했던 전남에는 한때 하나의 우스갯소리가 통했다.
전남에서 세금을 많이 걷으려면 술이라도 많이 마시게 해서 주류세를 걷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전남 22개 시·군은 각각 지역 특성을 반영한 산업단지를 만들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려는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농어촌 고령화와 청년 이탈, 인구 감소, 지리적 여건, 그리고 중앙정부의 불균형한 지원 탓에 전남 산단은 외면받아 왔다.
24일 국토연구원 산업입지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전남 일반산업단지 31곳(국가산단·농공단지 제외)의 미분양률은 7.2%로, 전국 716개 단지 평균 3.4%의 두 배 넘는 수준이다.
전남 미분양률은 17개 시·도 가운데 강원(7.4%)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전남 31개 일반산단이 분양 공고를 낸 2025만㎡의 7.2%인 146만㎡는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축구장(7140㎡) 205개 면적에 달한다.
전남 일반산단 미분양률은 5년 전인 2018년 24.1%에 달하며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전남 산단은 해마다 조금씩 미분양률을 줄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전남 자치단체들은 저마다 파격에 가까운 입주 혜택을 내걸고 기업 모시기에 나섰다.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으로 지정된 나주 혁신산업단지는 빛가람혁신도시 이전기관인 한국전력 등과 우선구매 제도 혜택을 보고 있다.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연간 구매 물량의 10~20%를 제한 경쟁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말이다.
혁신산단이 ‘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에 지정된 2015년 이후 7년간(2016년~2022년) 한국전력과 우선구매 제도 계약을 맺은 금액은 7014억1000만원이다. 한전에 직접 물품을 만들어 판매한 혁신산단 기업(직접생산 승인업체)은 60개사에 달한다. 혁신산단에 입주한 160개사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전과 한전KDN, 한전KPS 등 전력그룹사에 납품하고 있다.
나주 혁신산단은 ‘한전의, 한전에 의한, 한전을 위한’ 산업단지라고 불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공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예고 속에서 산단 입주 기업들은 대대적인 한전이 발주량을 줄일 것을 걱정하고 있다.
5년 단위로 지정되는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이 오는 2025년 2월 만료를 앞두고 있다.
혁신산단은 4개 산단에 걸친 ‘에너지밸리’ 조성과 ‘공기업형’ 강소연구개발특구 최초 지정 등으로 산단 발전의 잠재력은 높지만 한전 발주만 바라보는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
입주 기업들은 혁신산단의 자생력을 키우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한 산업단지관리공단 등 산단 총괄·관리 전담기관의 필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혁신산단 입주기업 48개사가 한데 모인 나주혁신산단협의회(회장 이남)는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 지정 만료를 앞두고 기업들의 판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제도 보완을 요구하고 있다.
분양 시작 10년에 되기 전에 99%의 분양률을 기록한 나주 혁신산단과 달리 2016년 조성을 마무리한 장흥 바이오식품산업단지는 8년 차 분양률이 65%에 머물고 있다. 풍부한 식품 자원을 기반으로 ‘바이오산업’이라는 특화단지를 내걸었지만, 이달 현재 축구장 59개에 달하는 면적이 미분양 상태다. 입주 기업 82개사 가운데 가동하고 있는 기업은 절반인 47개사(57.3%)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삼중고를 만나 선뜻 첫 삽을 뜨지 못하는 기업들의 유동성 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이 때문에 명절을 앞두고 인도 곳곳에 무성하게 난 풀을 베는 건 연례적 행사가 됐다.
장흥군은 오는 2026년까지 4년간 산업단지 분양률을 8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바이오산단 입주기업에는 분양가 최대 반값(50%) 할인을 내걸었고, 공업용수는 업계 최저 비용 수준으로 공급한다.
중기부 ‘지방중소기업 특별지원지역’으로 선정된 덕분에 오는 2025년 2월까지 법인세·소득세를 4년간 50% 감면받고, 취득세·재산세는 75%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바이오산단 입주 3년을 맞은 훈제오리 가공 식품 전문기업 모아푸드㈜의 박왕섭 전무는 “바이오산단 입주 초기에 입지 보조금·시설 보조금 등 10억원이 넘는 지원을 받았다”며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지자체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으나 고질적인 인력난과 비수도권 기업이 갖는 불리한 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찾은 프랑스 파리의 ‘스테이션 에프(F)’는 전 세계 1000개 넘는 창업기업이 모여드는 ‘혁신 창업거점’으로 불린다. 업종에 관련 없이 예비·초기 단계·취약계층·여성 창업기업 지원대상을 선정해 이들의 출발을 돕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페이스북, 네이버, LVMH 등 대기업과 인큐베이터(육성 전문가)가 입주해 27개 이상의 특화업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특징이다. 같은 달 파리에서 열린 유럽 최대 규모 창업 박람회 ‘비바 테크놀로지’에서 만난 광주·전남 기업인들은 지역 산업 생태계가 가야 할 길의 첫 번째로 연고주의 탈피를 꼽았다. 때로는 지역 울타리를 넘어 넓게 내다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업을 지역에 붙잡아두는 연고주의를 벗어나 공격적인 판로 지원을 해야 한다”며 “전남 수출지원 시장개척단 등 시장 발굴을 위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협업과 지원이 있어야 상품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7월 ‘광주전남 지역혁신체계의 기술·인력 자립기반 연구’ 보고서를 발표한 전성범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 과장은 “전남 지역 주력산업은 환경·에너지 소재부품과 친환경에너지 설비·기자재, 자연유래 헬스케어(건강관리) 제품이지만 여전히 조선업, 음식료품, 석유·화학 등 기존 특화업종에 집중된 구조를 보여 지역산업 육성 방향과 맞추지 못하고 있다”며 “지역 노동시장 기술인력 일자리는 풍부하지만, 인재양성 기반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인력 부족형’으로 분류된다”고 지적했다.
전 과장은 “전남에서는 산업통상자원부·국토교통부 공동 주관 ‘산업단지 대개조 사업’을 축으로 기존 노후산업단지의 구조를 전환하고 신산업을 육성하려는 중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며 “폐교와 공공기관 이전 부지 등을 활용한 일자리 거점을 마련하고 기업체를 장기간 유치하는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입지 규제 완화를 통해 캠퍼스 부지 일부를 산업단지로 지정하는 ‘캠퍼스 혁신파크 ’ 사업 등 산업입지 정책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끝>/글·사진=백희준 기자 bhj@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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