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장관의 이념 프레임?…정율성 공원 철회 요구 ‘논란’

‘공산군 응원대장’ SNS 글에 지역사회 “도 넘은 흑백 논리” 반발
비밀항일운동에 뛰어난 음악적 업적…수많은 중국관광객 광주 찾아
한중 교류 매개 역할…강기정 시장 “적대 정치 그만…조성사업 계속”

22일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을 기리는 역사공원 조성사업이 진행 중인 광주시 동구 불로동의 정율성 생가.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광주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공개 촉구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정율성(1914~1976) 선생이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공산군 응원대장’인 만큼 세금을 들여 기념공원을 조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박 장관의 주장이다.

하지만 지역 사회에서는 박 장관이 항일운동에 매진했던 정 선생의 업적을 낡은 이념적 프레임으로 재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항일 운동 기록이 있는 인물이라도 북한과 접점이 있으면 기려서는 안 된다는 시대착오적인 ‘흑백 논리’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22일 개인 페이스북에 “광주시가 올해 말까지 ‘정율성 기념 공원’을 짓는다”며 “북한의 애국열사능이라도 만들겠다는 것이냐”는 원색적인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어 “정율성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현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우리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주장했다.

광주 출신인 정 선생은 의열단 소속으로 비밀항일운동을 하는 동시에 음악가로서 재능을 살려 항일 구국 예술활동을 해 온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중국 남경 의열단에서 설립한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군정대학 정치부 선전과, 화북조선혁명청년학교 등에서 활동하면서 항일 운동을 전개했다.

남경에서 ‘5월문예사’에 참여하고 중국 저명 음악가 선성해를 사사한 정 선생은 ‘조국 향해 나가자’, ‘유격전가’, ‘여성 전투가’, ‘10월 혁명 행진곡’, ‘항전 돌격 격동가’, ‘조선 인민 행진곡’ 등 항일 가요를 작곡했다.

이 중 중국 인민해방군가인 ‘팔로군 행진곡’, 중국의 아리랑 격인 ‘연안송’ 등이 유명해지면서 정 선생은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추앙받고 있다.

정 선생은 한·중 교류의 상징적 인물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4년 서울대 강연에서 정 선생을 한·중 우의의 상징으로 거론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베이징대 강연에서 정율성 선생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 선생은 우리 전통음악 보존에도 기여했다. 1951년 서울에서 종묘제례악과 연례악 등 2부 18집의 국악 악보를 찾아내 보존하고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아내 정설송씨를 통해 대한민국에 기증했다. 현재 이 악보는 한국음악사상 문화재격으로 보존되고 있다.

광주·전남 지역사회에서는 박 장관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항일운동 업적을 무시하고 정 선생을 공산군의 앞잡이처럼 표현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박 장관의 공원 조성 철회 요구를 일축하고 조성사업을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조국 독립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라며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고 밝히며 박 장관의 의견을 반박했다.

이어 “정 선생의 업적 때문에 광주에 수많은 중국 관광객이 찾아온다”면서 “적대 정치는 그만하고 다른 것,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반기는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시라”고 강조했다.

노성태 남도역사연구원장은 “정 선생이 1948년 김일성에게 표창을 받은 것은 같은 해 9월 북한 정권이 수립되기 전이었고, 당시 받은 깃발마저 인공기가 아닌 태극기였다”며 “정 선생을 북한 인민군의 앞잡이라고 표현한 박 장관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원봉 의열단 단장을 기리는 밀양시 의열기념공원 등은 괜찮고, 정율성을 기리는 광주는 안된다는 것은 광주를 타깃 삼아 정치적인 공세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광주시와 자치구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치고 있다.

남구는 지난 2009년 양림동에 있는 정율성 생가 인근에 ‘정율성 거리’를 조성하고 정 선생의 일대기, 사진, 음악, 영화 등을 전시했다.

광주시는 지난 2020년 3월부터 동구 불로동에 있는 정율성 생가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소유권 분쟁을 마친 올해부터 조성 공사를 재개해 올 연말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장윤영 기자 zza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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