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이승규 씨, 업사이클링 뮤직센터 ‘물꼬’ 오픈
PVC 압착 바이올린·농약분무기 첼로 등 악기 제작…체험 공간도
“물질적 쓰레기는 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렇지만 스트레스, 우울 같은 ‘마음의 쓰레기’는 쉽게 버릴 수도 없지요. 이번에 문화공간에서 펼치는 업사이클링 뮤직은 물질과 마음의 쓰레기가 하나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쓰레기를 의미 있는 예술로 승화시키는 정크아트를 보면서, 우리 마음도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3일 오전에 방문한 업사이클링 뮤직센터 ‘물꼬’(중흥로 209번길 8)에는 세련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승규씨가 최근 터를 잡은 이 공간에는 감각적인 오브제와 피아노, 그리고 미니카를 닮은 듯한 바이올린, 농약 분무기 통으로 만든 첼로까지 독특한 악기들이 비치돼 있었다. 공간의 이름처럼 계림동에 예술의 ‘물꼬’를 틔우려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서 악기를 살펴보고 있는데 “귀를 막으세요”라는 정중한 요청을 받게 된다. 귀마개를 착용하고 3분간 내 안의 소리에 주목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뭔가 다양한 ‘소리’를 기대하고 들어선 기자에게 이 씨의 요청은 작은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침묵 속에서 심박은 드럼소리로 들려왔고 들숨·날숨은 관악기처럼 느껴졌다. ‘어떤 소리가 들리냐’는 그의 질문에 기자는 “한 편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들었다”고 답했다.
이후 내부를 둘러보니 공간 한켠에 이목을 끄는 유니크 첼로 콰르텟의 악기들이 있다. 작품들은 이씨가 2022년부터 버려진 스테인리스 농약분무기와 사용하지 않는 연습용 첼로를 결합해 업사이클링한 것으로 정크아티스트 고근호, 주홍과 함께 제작했다.
최근에는 9개월에 걸쳐 레고 소재의 PVC를 압착해 바이올린도 만들었는데 직접 f홀(바이올린 구멍)을 뚫고 ㎜ 단위의 소재까지 신경 쓴 작품이다.
이씨는 “업사이클링 악기가 실제 악기와 소리의 차이가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직접 커버곡을 녹음해 보니 나무 악기에 비해 차이는 있지만 음색과 음량에 있어 아주 큰 다름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최대한 일반 악기와 사이즈 등이 호환되게 만들어 연주자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소박한 ‘프리페어드 피아노 연주회’를 선보였다.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현대음악의 거장 존 케이지가 완성한 것으로 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주법이다. 미리 구겨진 페트병, 나사못, 맥주캔 등을 현 위에 올려두고 연주해 임의의 소리를 내게 한다. 그동안 쓰레기로만 여겨졌던 사물들이 현 위에서 즉흥성을 갖고 예측 불가한 소리를 만들어 내는 데서 의외의 느낌을 전달한다.
이 작곡가는 피아노 현 중간마다 피스와 워셔 등 나사못들을 꽂고 즉흥곡을 시연했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울리는 피스와 고리들은 미니 심벌즈와 같이 소리를 울렸고, 현 위에서 팝콘처럼 튀는 오브제들은 독특한 음색을 남겼다.
이씨는 “프리페어드 피아노 연주를 위해 20가지 정도의 쓰레기에서 각각 어떤 소리가 나는지 메뉴얼화했다”며 “업사이클링 악기와 비슷한 맥락에서 폐품들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잃어버린 동물의 사육제’ 연주도 감상할 수 있었다. 방문객이라면 신청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는 이 노래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에서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 멸종 위기의 북극곰, 재두루미, 상괭이, 수달, 흰뿔 코뿔소에 이르기까지 기후위기와 관련한 주제의식을 담았다.
프로그램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씨는 “예술테라피라 칭하기엔 지나치게 거창한 면이 있다”며 “방문하는 이들이 다양한 예술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이 씨는 “‘물꼬’가 많은 사람들이 업사이클링 뮤직에 대해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며 “이곳에서 환경과 악기에 대해 생각하는 한편 ‘물질로서의 쓰레기’를 넘어 ‘마음의 쓰레기’를 비워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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