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0㎜ 폭우에 침수 피해 목포 석현동 가보니
주유소 잠겨 기름저장고 물 새고
가게 밖 냉장고 빗속 떠내려가
“고장난 전자제품 장사 막막해”
주민들 밤새 피해 막기 안간힘
목포시 지정 침수취약지구인데
모래주머니도 없이 안일 대처 논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막을 새도 없이 다 잠겨버려 이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24일 오전 목포시 석현동 석현삼거리는 왕복 8차로 중 한 차로도 보이지 않을 만큼 흙탕물 천지였다. 이날 새벽부터 오전까지 193.4㎜의 장마비가 내리면서 석현동 일대 상가들이 물에 잠겨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시간당 44.2㎜의 비가 쏟아지자 석현동 일대의 도로는 무릎까지 물이 차 올랐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인 오전 9시에서야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2시간이 더 지나 도로가 드러나자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상가 주인들이 침수를 입은 상가에서 굳은 표정으로 연신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전자제품 가게에서 판매를 위해 밖에 내놓았던 세탁기는 빗속에 100m 넘게 떠내려 가버렸다. 사람 키보다 큰 양문형 냉장고는 문 두개가 분리돼 인도 한가운데 놓여있기도 했다.
중고 전자제품 매매상점을 운영하는 최광춘(66)씨는 밤새 많은 비가 내릴 거라는 예보를 듣고 전날 밤 11시부터 가게를 지켰다.
최씨는 “뜬 눈으로 가게에 나와 밤을 새웠지만 쉴 새 없이 퍼붓는 비는 어찌할 수 없었다”면서 “아무리 퍼내도 가게로 들어오는 물을 막을 수 없었고 가게 앞에 진열해둔 전자제품들이 하나 둘씩 떠내려 가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수습에 나선 최씨는 지인과 함께 가게에서 물건들을 하나 둘 꺼내 말리기 시작했다. 전자제품 특성상 물에 잠기면 고쳐 팔 수도 없어 가게 안과 밖에 놓인 수 십개의 전자제품을 모두 갖다 버려야 하는 상황이지만 혹시라도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이 있을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최씨는 고장 난 제품 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도로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건너편 주유소도 상황은 비슷했다. 3년 전부터 주유소를 운영 중인 박경조(45)씨는 쓰러진 주유소 간판을 세우고 아내와 양수기를 이용해 주유소 내부에 들어찬 물을 빼내기 바빴다.
침수취약지구였던 석현동은 2년여 전에도 침수가 발생해 목포시에서 양수기를 설치해줬지만 순식간에 쏟아지는 비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씨는 전날 밤 10시에 퇴근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자정께 주유소에 다시 출근했지만 침수를 막지는 못했다. 가게에 설치된 3000만 원 상당의 주유기 세 대와 4000만 원 가량의 세차기계 한 대가 물에 잠겨 전원이 켜지지 않는 피해를 입었다.
기름 값 인상 소식에 가득 채워놓은 지하 기름저장고에도 물이 새 수송비와 정제비를 추가로 들이게 됐다. 기름 흡착포를 바닥에 깔고 닦길 반복하던 박씨는 “앞으로 몇 주는 물론이고 이 장사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발목부터 차 오르던 비가 계단을 넘어 사무실 내부까지 들어오려 하자 물을 막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를 막을 모래주머니를 찾지못했다”면서 “몇 년전 침수가 발생한 곳에 많은 비가 예보됐지만 모래주머니 같은 것도 설치해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석현삼거리는 목포시에서 지정한 침수취약지구다. 목포시는 전날 많은 비가 예보됐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모래주머니조차 설치하지 않아 안일한 대처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대해 목포시 관계자는 ”목포 삼향천으로 모인 물이 인근 바다로 빠져야 하는데, 만조시기와 겹쳐 배수 시간이 지체된 탓”이라면서 “내년 중에 석현동 일대에 지하 저류지를 설치하고 지상에는 펌프장을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갑작스럽게 퍼붓는 비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석현동이 저지대인 탓에 침수되기 쉽고 구배(경사면의 기운 정도)가 적어 하천으로 물을 방류하기가 힘든 지형이라는 것이다. 목포시는 25일 오후까지 비가 예보된 만큼 비상근무와 펌프장 상시 가동으로 추가 피해를 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목포=글·사진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목포=박영길 기자 ky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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