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전남대 사범대 ‘광주민중항쟁도’ 벽화 제거 요청
전남대생 커뮤니티 ‘사범대 벽화 지우기’ 게시물 잇따라
1990년대 시대정신 반영…의미있는 학생 작품 보존해야
현실 막막한 젊은 세대 달라진 오월·통일 인식 찬반 논란
전남대학교 학생들이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전후로 인터넷에 전남대 옛 사범대학 1호관(현 법학전문대학원)에 그려진 ‘광주민중항쟁도’를 지워달라는 게시글을 잇따라 올려 논란이다.
벽화에 적힌 ‘민족해방’ 문구와 상단의 백두산 천지 그림이 ‘북한 선전물 같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5·18 당시 광주시민들은 계엄철폐와 민주화를 요구했지 ‘민족해방’, ‘자주통일’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 벽화가 오히려 ‘종북 의혹’을 키운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전남대 졸업생들과 교수, 벽화 원작자 등은 5·18때도 통일에 대한 요구가 나온 바 있으며 벽화를 그린 1990년대의 시대 정신까지 포함한 결과물이라고 일축했다.
지난 18~19일 전남대 재학생·졸업생만 가입할 수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익명의 전남대 학생들이 쓴 ‘사범대 벽화 지우기’, ‘빨갱이 벽화 없애는 방법’, ‘벽화 좀 고쳤으면 좋겠음’ 등 제목의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들 게시글은 5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좋아요’를 많이 받아 인기 게시글 목록인 ‘HOT 게시판’까지 올라갔다.
게시글에는 ‘북한에 외주 맡긴 거라고 해도 철석같이 믿겠다’, ‘대놓고 종북스러운 벽화를 남겨두는 것 자체가 아직도 학교에 간첩세력의 입김이 남아있다는 것’, ‘친북한적 오해를 일으키는 벽화를 굳이 남겨둘 필요가 없다’는 등 내용이 담겼다. 그 중에는 ‘벽화가 역사 왜곡을 하고 있으니 5·18특별법 위반으로 고발해야 한다’는 글도 있었다.
광주민중항쟁도는 5·18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주제로 담아낸 최초의 벽화다.
지난 1990년 5·18 10주년을 맞아 전남대 그림패 ‘마당’, 예술대학 미술패 ‘신바람’, 사범대 미술교육학과 등이 ‘벽그림 추진위원회’를 꾸려 가로 10m, 세로 16m 크기로 단 5일만에 만들어낸 작품이다. 지난 2017년에는 전남대 동문들끼리 ‘벽화복원추진위원회’를 꾸리고 성금과 지원금 등 4600만원을 모아 벽화 복원 작업을 하기도 했다.
1990년 당시 원화를 그렸던 하성흡 작가는 “5·18 당시에도 민주화뿐 아니라 ‘통일’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며 “특히 90년대 노태우 정권 시기 통일에 대한 전 국민적 염원이 커지면서 ‘오월에서 통일로’라는 시대 정신을 담기 위해 민족해방·백두산 천지를 그려넣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980년 5월 15일 박관현 전남대 총학생회장은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대성회에서 “우리가 민족민주화 횃불대행진을 하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중략)…우리 민족의 함성을 수습하여 남북통일을 이룩하자는 뜻”이라고 연설한 바 있다.
하 작가는 “사범대 1호관 건물 또한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벽화의 가치 하나만으로 허물지 않은 것”이라며 “의미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무작정 북한 선전물이라고 폄하하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상엽 전남대민주동우회 사무국장은 “광주시민이 빨갱이·폭도로 몰린 것 또한 분단 상황이 만든 비극이므로, 외세로 인한 분단 현실을 극복하자는 취지로 ‘민족해방’ 문구를 넣은 것”이라며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통일을 이야기하면 북한을 찬양하는 걸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한숨을 쉬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논란이 최근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 5·18과 통일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달라진 현실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가 취업 문제 등으로 현실이 막막해지자 통일 문제를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이번 논란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다.
최영태 전남대 인문대학 명예교수는 “최근 젊은이들은 이념적인 인식이 극단으로 갈려 기성세대보다 더 북한을 싫어하는 경향을 보인다”며 “젊은 세대의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정권에 따라 극우적 목소리가 커지면서 기성세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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