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의미 탐색하는 이색 전시 열린다

ACC ‘걷기, 헤매기’ 27일~9월3일
한국·벨기에·세르비아·과테말라 등
6개국 현대미술가 13팀 참여
전시 연계 세미나·워크숍도 예정

박고은 작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

걷기 열풍이 불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걷기는 손쉽게 할 수 있는 최적의 운동으로 각광을 받고 있어서다. 걷기는 특별한 운동기구가 없이도 가벼운 차림으로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직장인들 가운데서도 점심시간 짬을 내 걷기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주부들도 집안일을 마치고 삼삼오오 마실을 돌 듯 동네를 걷는 이들도 있다.

걷기라는 행위를 매개로 의미를 탐색하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장 이강현, ACC)에서 열리는 ‘걷기, 헤매기’가 그것. ACC는 27일부터 9월 3일까지 복합전시 3, 4관에서 ‘발견하는 걸음, 확장하는 시선’을 주제로 행사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비롯해 벨기에, 세르비아, 인도네시아, 과테말라, 홍콩 등 6개국 현대미술가 13(팀)이 참여한다. 특히 전시는 다양한 걷기의 양상은 물론 보행자 이야기, 길 위에서 만난 도시의 역사와 오늘의 풍경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와 연계한 세미나와 워크숍도 마련돼 있어 사회적 문화적 관점으로 걷기의 의미를 다채롭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해외 유명 작가의 작품들도 볼 수 있다. 장르 또한 화화와 조각은 물론 사진과 영상, 키네틱 예술(동작예술), 인터랙티브 아트(상호작용예술) 등 다채롭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작 ‘연인 만리장성 걷기’

눈에 띄는 작품 가운데 하나는 마리나 세르비아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퍼포먼스를 확립하는데 기여한 작가는 작품 ‘연인, 만리장성 걷기’를 선보인다.

작가는 연인 울라이와 90일간 만리장성 양 끝에서부터 걸어 중앙의 지점에서 만나 이후 각자 방향으로 헤어진다. 이 퍼포먼스는 거대한 우주 속에 각자 여정을 홀로 걷고 있는 이들의 삶이 바로 삶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던진다.

80년 5월 광주의 역사적 기억을 소리를 통해 추적하는 작품도 있다. 미라 리즈키 쿠르니아는 도시의 사운드스케이프에 관심을 갖고 그것과 상호작용을 통해 발현되는 기억과 지각의 문제를 탐구한다. 그의 작품 ‘발자취를 쫓다’는 1980년 광주의 오월과 1998년 5월 인종차별로 벌어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폭동의 역사적 기억을 모티브로 한다.

작가는 자카르타와 광주 두 도시를 걸으며 발견한 소리를 채집하고 인터뷰를 통해 사건을 겪은 이들의 목소리를 발굴한다. 이를 통해 사운드스캐이프에서 자카르타의 소리로 광주의 이야기를, 광주의 소리로 자카르타의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제59회 베니스 비엔날레’ 벨기에 국가관 대표 작가인 프란시스 알리스는 회화 연작과 퍼포먼스 영상을 선보인다. ‘국경 장벽 유형학’과 ‘실천의 모순 5’가 그것. 각국 장벽을 기록한 ‘국경 장벽 유형학’은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삼팔선이 담겨 있어 남다른 의미를 발한다.

광주의 길 이야기를 담은 체험형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박고은 작가의 상호 작용 작품 ‘글자를 입은 소리들이 모인 지도’는 광주의 옛길 이름이 담긴 지도 위를 유영하는 체험이다. 강동주 작가의 ‘유동, 아주 밝고 아주 어두운’은 한강의 유속에 관한 드로잉을 표현한 것으로 개발의 역사 뒤편에서 회복과 저항의 토대로 존재해왔던 강의 흐름을 주목한다.

공장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달리는 김재민이의 ‘레이온 공장 달리기’도 이색적이다. 작가는 한국과 중국, 일본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공장의 자취를 들여다본다. 공업지대의 이동을 중심으로 현대 도시의 탄생을 비롯해 팽창, 소비 사회를 살펴본다.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퍼포먼스도 마련돼 있다. ‘제51회 베니스 비엔날레’황금사자상에 빛나는 레지나 호세 갈린도는 신작 퍼포먼스‘땅은 망자를 감추지 않는다’(5월 14일)를 아시아문화광장에서 펼친다.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으며 작가의 황금사자상 수상작 ‘누가 그 흔적을 지울 수 있을까?’와 근작 ‘사람들의 강’도 감상할 수 있다.

전시와 연계한 세미나와 워크숍 프로그램도 예정돼 있다. 김재민이와 미라 리즈키 쿠르니아가 오는 27일 ‘아시아문화연구 학술세미나’에서 작품제작과 관련된 연구물을 발표한다. 새로운 질서 그 후의 워크숍 ‘둘러보기’(6월 23~25일),‘제2회 방직공장 달리기(광주편·9월 2일)’는 또 다른 걷기 경험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한편 이강현 전당장은 “이번 전시는 일상에서 걷기의 의미를 돌아보며 변화를 모색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며 “많은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찾아 봄날 걷기의 미학을 누리고 느꼈으면 한다”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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