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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부상자회·특전사동지회
발포명령자·암매장지 질문에
“모른다” “들은적 없다” 반복만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공로자회가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두 번째로 계엄군의 양심고백·증언을 듣는 행사를 열었으나, 증언자가 발포명령자나 암매장지 등 진상규명 주요 질문은 물론 당시 전후 상황까지도 “모르겠다”는 답변만 반복해 알맹이가 없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20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은 1980년 5월 당시 3공수여단 작전보좌관으로 상황실 근무를 했던 최명용(74) 예비역 소령이 증언대에 올라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에서 이뤄진 최초 발포 당시 상황,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서 이뤄진 암매장 정황 등을 증언했다.
하지만 최 소령은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증언회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13차례, “보거나 듣지 못했다”는 말을 7차례 반복했다.
최 소령은 최세창 3공수여단장을 비롯한 상부로부터 발포·사살 명령이 내려왔는지 여부에 대해 묻자 “발포 명령을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최세창 여단장이 ‘권총 3발’을 쏘는 것으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정황에 대해서는 “권총 3발을 쐈다 해서 ‘사격명령’으로 보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암매장 정황에 대한 설명도 불분명했다. 최 소령은 “최세창 여단장의 명령을 받고 전남대 대학 건물 뒤편과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 시신을 가매장했다”면서도 “전남대와 광주교도소 모두 가매장했던 곳에 건물을 지어버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 매장한 시신이 몇 구인지 묻는 질문에도 “저는 17구 정도로 기억하는데, 12구라고도 들은 것 같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투입 날짜와 전남대에서 퇴각한 날짜, 가매장을 한 날짜, 철수한 날짜 등에 대해서도 “정신없이 일하느라 날짜 감각이 없었다”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이번 증언회가 지난 3월 13일 열린 제1회 증언회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1회 증언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 수차례 증언자로 참여했던 김귀삼(68) 예비역 중사를 초청하고 과거 증언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맹탕’ 지적을 받았다. 최 소령 또한 진상조사위에서 이미 12차례 증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날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오는 24일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20일 광주시 서구 치평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제2회 ‘오늘의 증언이 5·18진상규명의 첫걸음이다’ 행사를 개최했다.
이날은 1980년 5월 당시 3공수여단 작전보좌관으로 상황실 근무를 했던 최명용(74) 예비역 소령이 증언대에 올라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에서 이뤄진 최초 발포 당시 상황, 전남대와 광주교도소에서 이뤄진 암매장 정황 등을 증언했다.
하지만 최 소령은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증언회에서 “모르겠다”는 말을 13차례, “보거나 듣지 못했다”는 말을 7차례 반복했다.
최 소령은 최세창 3공수여단장을 비롯한 상부로부터 발포·사살 명령이 내려왔는지 여부에 대해 묻자 “발포 명령을 들은 바 없다”고 답했다. 최세창 여단장이 ‘권총 3발’을 쏘는 것으로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정황에 대해서는 “권총 3발을 쐈다 해서 ‘사격명령’으로 보긴 어렵다”고 답변했다.
암매장 정황에 대한 설명도 불분명했다. 최 소령은 “최세창 여단장의 명령을 받고 전남대 대학 건물 뒤편과 광주교도소 공동묘지에 시신을 가매장했다”면서도 “전남대와 광주교도소 모두 가매장했던 곳에 건물을 지어버려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또 매장한 시신이 몇 구인지 묻는 질문에도 “저는 17구 정도로 기억하는데, 12구라고도 들은 것 같다”고 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투입 날짜와 전남대에서 퇴각한 날짜, 가매장을 한 날짜, 철수한 날짜 등에 대해서도 “정신없이 일하느라 날짜 감각이 없었다”며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이번 증언회가 지난 3월 13일 열린 제1회 증언회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1회 증언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에 수차례 증언자로 참여했던 김귀삼(68) 예비역 중사를 초청하고 과거 증언을 되풀이하는 데 그쳐 ‘맹탕’ 지적을 받았다. 최 소령 또한 진상조사위에서 이미 12차례 증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이날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오는 24일 특전사동지회와 함께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발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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