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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서양화가 한희원 첫 ‘시화집’ 발간 “외로움과 자유가 품어낸 그림과 시”

by 광주일보 202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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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조지아공화국에서 10개월간 머물렀던 한희원 작가가 시화집 ‘이방인의 소묘-트빌리시에서 보낸 영혼의 일기’를 내고 11일부터 7월7일까지 김냇과에서 기념 전시를 연다.

조지아공화국의 고도(古都) 트빌리시에서 10개월의 여정을 보낸 작가는 극도의 외로움에 시달렸다. 아침에 일어나는 게 무서울 때도 있었고, 시간은 마냥 더디게 흘러 ‘초(秒)’가 지나는 것마저 셀 지경이었다. 그 때 그의 동반자가 되어 준 건 그림, 시, 와인, 그리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쇼팽의 ‘피아노협주곡’과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이었다.

지난해 12월 광주로 돌아오는 길, 그의 손에는 25호 크기의 작품 360장이 들려있었다. ‘시가 찾아오면 일기처럼’ 썼던 70여편의 시도 함께였다. 엄청난 작업량이었다. 며칠전, 한희원미술관에 걸린 그 때의 작업물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의 생애, 가장 밝은 색감의 작품이지 않을까”라는.

 

서양화가 한희원 작가가 생애 첫 책을 냈다. 이번에 출간한 건 ‘시화집’이다. 재수생 시절부터 그가 늘 품고 있던 시를 쓰는 일과 45년 동안 계속돼온 그림 그리는 일이 하나로 합쳐진 작업이다. 첫 책이라니 의외였다. 오래 전부터 ‘시를 쓰는 화가’로 알려진 데다 팸플릿 등에 실린 글들도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이방인의 소묘-트빌리시에서 보낸 영혼의 일기’(코리아 books)를 펴내고 기념전시회, 소박한 시노래 음악회를 연다. 전시회는 11일부터 7월 7일까지 문화예술공간 김냇과에서 열린다. 290여페이지 분량의 시화집에는 ‘마르자니쉬빌리의 밤’ 등 외국에서 쓴 시 40편, 지금까지 쓴 시 49편 등 89여편과 그림 70점이 실렸다.

한 작가는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이방인으로 살았다. 몇년 전 스스로 고갈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즈음, 지인과 함께 떠난 트빌리시는 너무 마음에 들었고, 장기 체류를 결정했다. 하지만 트빌리시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양림동 같은 오래된 공간을 좋아하는 저에게 맞춤한 장소였어요. 무엇보다 노래와 춤 등 다양한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위로가 됐습니다. 하지만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너무 외롭기도 했어요. 우울증 걸리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 때 할 수 있는 일이 그림 그리고, 시 쓰는 일이었어요. 유화는 한국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작품을 말아서 가방 안에 넣어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아크릴로 작업을 했죠.”

 

한희원 작 ‘비 내리는 마르자니쉬빌리’

진득한 유화 작업이 자신에게 맞다고 생각해 한번도 아크릴 작업을 한 적이 없었던 그는 건조 시간이 빠르고 쨍한 색감을 보여주는 아크릴 작업에 몰두했다. 나이프로 찍어바르고, 뿌리고, 철심으로 긁는 등 다양한 기법을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이번 전시작 중에는 아코디언을 켜는 늙은 할아버지 등 다양한 인물들이 눈에 띈다. 강렬하고 화려한 색감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민중미술을 했던 80년대를 제외하고는 30년간 인물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어요. 그곳 음악인들은, 연주 자체에 한 사람의 생애 전체가 담겨 있는듯 했어요. 격렬하고, 때론 사색적으로 생을 연주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인물을 통해 그런 인생을 그려내고 싶었죠. 인간의 궁극적인, 근본적 문제를 탐하는 사람들의 깊이 있는 모습 역시 마음에 남아 화폭에 담으려 했습니다. 고색창연한 느낌과 화려한 디자인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는 도시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내려하니 색감은 저절로 밝아질 수밖에 없었구요.”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에 돌아와 작업한 150호 유화 작품을 비롯해 현지에서 그렸던 300여점의 작품을 모두 보여주려한다.

시는 오랜 동안 한 작가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었다. 시인 친구·후배도 많다. 이번에 시화집에는 한 작가의 시집 발간을 제일처럼 좋아해준 오랜 친구 곽재구 시인과 박남준 시인, 가수 장사익, 트빌리시에서 밤늦게 포도주를 마셨던 배우 정동환이 추천글을 썼다.

“시집을 내는 꿈은 계속 갖고 있었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시인 친구들에게 미안했던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들이 시 한편을 쓸 때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기 때문에요. 환갑 땐 시집 한 권 정도는 내도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해 한희원미술관을 열면서 뒤로 미뤄졌죠.”

그는 사람 복이 많다. 작가에게는 드문 10개월간의 여정도 오랜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 “작업에만 몰두하라”며 그의 등을 떠밀고 지원을 했기에 가능했다. 오랫동안 만나온 작곡가 한보리에게선 “형의 시를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음유시인 한보리와 한희원 시의 만남-길에서 만난 사람들’ 공연을 7월 3일 역시 사랑하는 후배들인 진진, 오영묵, 나무가 참여한 가운데 열 계획이다. 가을에는 포엠 콘서트와 출판기념회도 연다.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던 그는 시에 대한 갈망이 컸다. 재수시절 혼자 시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평양숭실대 양주동 박사의 1호 제자로, 춘원 이광수의 추천을 받아 동아일보에 희곡으로 등단했던 아버지(한이직)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인지도 몰랐다. 큰아버지는 한경직 목사다. 삼수 하던 시절 누나가 “이 그림을 보면 그림 속에서 새 소리가 들려. 너도 그림을 그려보는 게 어떻겠냐”며 찾아가보라고 알려준 곳이 오승윤 선생이 운영하던 백제화실이었다. 그 곳에서 조진호 작가 등을 만나 죽기살기로 그림을 그렸고 조선대 미술교육학과에 들어갔다. 10년간 근무했던 순천여상에서는 국어 선생이던 설재록 작가를 만났다. 그의 권유로 ‘순천문학’ 창간 멤버가 됐고 자연스레 정기적으로 시를 쓰게 됐다.

“이번에 스스로 공부가 많이 됐어요. 제 작품에 자유로움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하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유스러움, 자연스러움은 억지로 만들면 감동이 덜하죠. 환경 속에서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게 진짜인데, 이국에 머물며 변화에 많이 흐트러지고, 말로만 영혼이 자유로운 게 아니고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게 큰 소득입니다. 거기서 했던 작업들을 하나의 형식으로 완성해 나가고 또 발전시켜 가는 게 저의 숙제입니다.”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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