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이나 입학식, 졸업식과 같은 행사와 어버이날, 스승의 날과 같은 기념일 그리고 개업식, 집들이 선물을 위해 우리는 식물을 산다.
나의 부모님은 평소 내가 원예학도인 것을 잊은 듯하면서도 지인의 개업식이나 집들이를 위해 위해 화분 선물할 때에 꼭 내게 “너 원예학과니까 화분 좀 주문해 봐”라고 하신다. 그러면 나는 핸드폰으로 주변 화훼 농장과 상점을 검색하고, 선물하기 알맞은 크기의 식물종을 적당한 가격에 주문할 뿐이다.
개업 축하와 집들이용 선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식물은 관엽식물이다. 강건해서 관리가 쉽고 잘 죽지 않아서 받는 사람도 부담이 없는 고무나무나 산세베리아, 드라세나 그리고 야자나무류가 대표적이다.
물론 이보다 더 특별한 식물을 원하는 사람도 있다. 아름답고 재배가 쉬운 것은 물론이고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 식물말이다. 선물 받은 이에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행운목, 행복을 의미하는 행복나무 그리고 부를 불러들인다는 금전수…. 재작년 방영한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금전수 화분이 등장한 후로 우리나라에서 금전수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식물의 형태와 재배 방법이 어떻든 이들에 담긴 ‘부’의 의미에 소비자는 쉽게 현혹된다.
금전수는 자오미쿨카스 자미폴리아라는 학명의 식물이다. 속명 자오미쿨카스는 소철속을 가리키는 자미오, 토란속을 가리키는 콜카스의 합성어로 잎 형태가 이들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전수는 아프리카 동남부 사막 원산의 다육식물이자 관엽식물이기에 잎에 수분을 많이 저장하고 있어 두껍고 광택이 있다. 다만 동전과 같은 동그란 잎이 가지에 매달린 모습이 돈이 줄줄이 달린 모습과 같다고 해 우리나라에서 금전수, 돈나무라는 유통명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실 돈나무라는 이름의 식물은 따로 있다.
10여 년 전 전북 부안의 바닷가에서 다섯 개의 흰 꽃잎을 가지에 가득 매단 나무를 본 적이 있다. 수도권에서 쭉 자라온 나는 당시 남쪽의 식물이 낯설었다. 함께 간 교수님께 식물 이름을 물으니 돈나무라고 했다. 이 돈나무와 시장에서 금전수라고 유통되는 것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오래 전 돈나무의 뿌리에서 똥 냄새가 나고, 열매에 똥파리가 자주 낀다는 이유로 이들을 똥나무라 불렀다. 돈나무의 원래 이름은 똥나무였다. 시간이 흐르며 발음상 ‘똥’이 ‘돈’으로 전파되어 어느 순간 이름이 돈나무가 되었고, 더 나아가 잎이 난 모습이 돈다발과 같다며 최근 화훼시장에서는 금전수와 더불어 이 진짜 돈나무도 부를 의미하는 식물로 유통되고 있다.
‘똥’과 ‘돈’의 거리감이 상당하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발음상 식물명이 변화한 흐름은 부자연스러울 게 없다. 그저 똥 냄새가 나고 똥파리가 자주 끼어 똥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식물이 도시 안에 들어와 부를 가져다 주는 식물로 통하게 된 결말은 인간의 허무맹랑한 욕망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처음 본 돈나무는 누군가에 의해 심어진 개체였지만, 전라도와 경상도 해안 지역과 제주도에서 돈나무는 자생한다. 그리고 지금 이들은 한창 노란 열매 꼬투리를 열어 안에 있는 새빨간 씨앗을 밖으로 내보이고 있다.
인류는 자연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늘 의미를 담아 왔다. 약용식물을 연구하던 16세기에는 인류에게 처음 발견된 미지의 식물을 불사초라 여겼으며, 빅토리아 시대에는 식물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아 꽃말을 전파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보다 많은 식물에게 ‘돈’과 관련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금전수, 돈나무 그리고 머니 트리라고 불리는 파키라…. 이들이 담고 있는 것은 실상 돈과 부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집착하는 2020년대 한국,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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