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에 담긴 세상

[서효인의 소설처럼] 구도의 애도 - 유영은 외 ‘구도가 만든 숲’

by 광주일보 2022. 11. 5.
728x90
반응형
최근 출간된 신예 작가 단편 앤솔러지의 표제작이자 신인 작가 유영은의 신작 단편인 ‘구도가 만든 숲’은 꽤 의뭉스러우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인 ‘구도’를 바라보는 화자 ‘나’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에 위치한 J시에 사는 구도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냉면집의 주인이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는 그 소식을 알려준 옛 아르바이트 동료인 나를 무작정 찾아온다. 나는 죽은 사장님의 조카로 그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일상은 전과 같다. 여름이면 매일을 허둥지둥 보내지만, 성수기가 지나고 겨울이 오면 “여분의 시간에 목이 졸리는 것”을 느끼며 그저 버틸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구도의 방문은 뜻밖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에 불과했고, 이모의 조카라거나 친인척이 아닌데다 이모는 돌아가신 지도 1년이 지났으니까. 나는 구도가 이렇게까지 이모를 애도해야 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심지어 나는 구도의 얼굴조차도 희미하다. 구도와의 특별한 일화를 떠올리려 하지만 그마저도 별로 없다. 그럼에도 늦은 밤 도착하는 손님을 위해 나는, 고속버스터미널에 마중 나와 있다. 주말에 오면 좋겠다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구도는 소식을 들었으니 바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드디어 구도가 도착했을 때, 눈에 보이는 건 이상하게도 부피가 크고 그에 비해 너무 가벼운 가방이었다. 나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구도의 행동과 행색에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그러나 구도의 의도는 명백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모(사장님)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것이었다. 구도는 이모가 도심에서 유일하게 숨통을 트여 줬던 공간을 알았고, 그곳의 흙을 가방에 한가득 가져 온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가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흙을 자신이 만들고 있는 15평짜리 인공 숲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구도가 만드는 인공 숲은 무엇일까? 구도는 왜 인공 숲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 인공 숲을 만든 후 구도가 하려는 일은 무얼까? 구도는 일단, 그 모든 것을 ‘애도’라고 말한다.

10월 29일 있을 수 없는 참사가 서울 한가운데에서 벌어졌다. 156명이 죽었고 20대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주최자가 없어 대비할 수 없었다는 사고 초기 정부 고위 관계자들의 말과 다르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음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안일했고, 비극은 이미 일어나 버렸다. 참사 직후 정부는 ‘국가 애도 기간’이라는 걸 설정하고 각 관공서에 조기를 게양하도록 했다. ‘근조’ 표기가 없는 검은색 리본을 통일해 달게 하였으며 ‘참사’ 대신에 ‘사고’, ‘희생가’ 대신에 ‘사망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으로 기이하고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애도를 장려하고 있다. 기간과 방식이 정해져 있는 애도를 애도라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정권에 대한 비판이나 책임을 추궁하는 일은 애도가 아닌 정쟁이라 매도당하고 있다. 리더라 할 수 있는 자들은 궁색한 변명으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일 뿐이다.

수년 만에 반복된 거대한 참사 앞에서 우리는 울음을 섞어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애도란 무엇인가. 어떻게 애도해야 하나인가. 소설에서 구도는 어릴 적부터 정을 주었던 J시의 인공 숲이 시 당국에 의해 사라지자, 자신이 아꼈던 공간을 제 나름의 방식으로 되살리려는 프로젝트에 매진한다. 그것이 바로 15평짜리 미니 인공 숲을 조성하는 일이다. 추억하고 안타까워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해 보길 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애도의 뜻을 담은 흙으로 채우려고 한다. 구도에게 애도는 1년이 지났든 아니든, 흙을 반찬통에 담는 행위가 어색하든 아니든, 겨울이라 흙이 얼어 그마저 실패했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다. 구도의 관심은 사라진 공간, 사라진 존재 자체이고, 그것을 대하는 깊디깊은 마음이다. 그래서 구도는 몸을 움직인다. 무엇이든 하려 한다. 실패할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이 사라지는 존재, 떠나보내는 존재 모두에게 위로가 될 것임을 알기에.

구도가 어릴 때부터 마음을 주었던 공간이 자연의 숲이나 바다가 아닌 ‘인공 숲’이라는 것이 이 소설의 의미심장함을 더한다. 구도에게는 주변에 가까운 것이 아닌 자연 숲이 아닌 내 곁의 인공 숲이 더 소중한 존재였다. 그날 이태원에 모인 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핼러윈을 두고 외국의 문화에 빠진 젊은이들의 휩쓸림 정도로 해석하는 것은 사회적 참사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반대로 왜 그들이 핼러윈이라는 인공 숲을 즐겼는지, 가만히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게 애도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효인의 소설처럼]어떤 비관 - 안녕달『눈, 물』

어떤 상실은 운명이다.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운명을 따르되, 그 따름의 과정을 애써 잊고 산다. 죽음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음의 공포에 질려 일상을 해칠 수는 없다. 죽

kwangju.co.kr

 

[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향이라는 감각, 목서라는 이름의 식물

작년 이맘때 완도수목원에 다녀와 찍은 식물 사진들을 친구들에게 보여 주었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나 거기 알아. SNS에서 봤어.” 식물원, 정원, 미술관, 박물관… 최근 대중에게 인기 있는

kwangju.co.kr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