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립미술관 ‘조르주 루오’전 한달]
서울 등 전국 미술애호가들 발길
58점 판화 연작 ‘미제레레’ 인기
“작가의 연민과 따뜻한 시선 감동”
“그림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베로니카’라는 작품을 보며 울컥하고 말았네요. 지금의 제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나 봅니다.”
“사실, ‘루오’라는 작가를 잘 모르고 전시회에 왔어요. 영상과 작품을 관람하며 늘 서민들을 향했던 그의 연민을 느낄 수 있었어요. 내 삶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번 쯤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림 한 점 한 점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던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에서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살피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도 했다. 이태원 참사와 광부 매몰, 경제난, 우크라이나 전쟁 등 다 같이 힘겨운 시간을 건너는 우리에게 위안과 작은 희망을 건네는 전시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20세기 미술계 거장으로 꼽히는 루오(1871~1958)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놓지 않았던 작가였다. 그의 작품은 제작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유효했다.
지난달 6일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개막한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조르주 루오’(2023년 1월29일까지)전이 개막 한달을 맞았다.
이번 전시에는 프랑스 퐁피두센터와 조르주 루오재단에서 엄선한 유화·판화·스테인드글래스·테피스트리·도자기 등 200여 점의 작품이 나왔다. 또 연계 전시 ‘조르주 루오와 한국미술:시선공명’전에는 이중섭·구본웅 등 23명 작가의 작품 5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일요일인 6일 찾은 전시장은 어린이부터 80대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람객으로 붐볐고, 여수·순천 등 광양 인근과 광주, 대전, 서울 등 전국에서 미술애호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루 세차례(오전 11시·오후1시30분·오후 3시) 진행되는 도슨트 해설은 인기가 높았고, 설명을 들은 관람객들은 자신만의 시선으로 다시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루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58점 판화 연작 ‘미제레레’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머무는 작품이었다. 전시 해설을 쓴 정웅모 신부가 ‘절망에서 구원이 필요한 인간 군상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칭한 ‘미제레레’ 연작 중 ‘때로는 눈 먼 이가 눈 뜬 이를 위로했다’, ‘이제 겨우 살만 하니 죽었다’, ‘어머니들은 전쟁을 증오한다’ 등의 작품은 현 시대와 맞물리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했다. 또 루오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대상을 그린 ‘두형제, ‘무지개 곡마단의 소녀마술사’와 ‘베로니카’ 등도 인기가 높았다.
광주에서 온 민경재씨는 “기존 작가들과 다른 영역을 만들어간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온전히 살펴볼 수 있어 좋았다”며 “‘미제레레’에서 보듯 그가 수십년 전 건넸던 이야기가 지금 현 시대에 다시 통용되는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광양에 거주하는 윤춘식 목회자는 “시대의 아픔을 신앙적인 고백들과 함께 표현해낸 작품들은 아픈 마음과 세상을 치유하는 것 같다”며 “늘 가난한 자들 곁에 섰고, 함께 아파했던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순천에서 전시장을 찾은 최원경씨는 “보통 전시에 가면 눈호강한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오는데 이번 전시는 좀 달랐다”며 “작가의 연민과 따뜻한 시선에 감동을 받았고, 제 자신의 삶도 많이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임선나씨는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요즘 우리 주변에 힘든 일이 많은데 위로가 된 전시였다”며 “한해의 마무리가 다가오는 시점에 나와 이웃을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다”고 덧붙였다.
광양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대형 전시 등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민들에게 문화향기를 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다. 특히 미래 예술가들을 키우는 광양창의예술고 학생들을 비롯해 여수여문초등학교 등 유치원, 초·중고생들의 관람은 학생들에게 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 소중한 기회가 되고 있다.
한편 오는 25일에는 루오 작품을 다수 소장한 일본 파나소닉재단 학예사 등이 참여하는 조르주 루오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며 18일과 22일에는 전남지역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미술교사 초청 간담회가 진행된다.
/광양=글·사진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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