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구청 홍성담 화백의 벽화
전남대 ‘광주민중 항쟁도’ 등
아파트 둘러싸인 회색도시에
알록달록한 색 입히며 활기
도시의 정체성·역사 살려내
◇회색도시를 변화시키는 예술, 도시벽화=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예술가예요! 온 세상이 여러분의 캔버스랍니다!”
화가 아저씨가 소녀와 함께 마을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주민들도 하나둘 참여해 춤을 추듯 신나게 그림을 그린다. 도시 온 거리가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어간다.
그림책 ‘회색도시를 바꾼 예술가들-벽화마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보물창고 刊)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이스트 빌리지를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변화시킨 라파엘·캔디스 로페즈 부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부부와 주민들은 나이와 인종, 직업을 따지지 않고 ‘예술로 우리 마을을 변화시키자’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묵묵히 동참했다. 벽화를 그리고, 공원의자를 밝은 색으로 칠하고, 길바닥에 시를 캘리그라피로 적어놓았다. 이스트 빌리지는 예술로 가득한 도시로 변화했고, 이곳에서 비롯된 ‘예술마을 운동’은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칙칙하고 삭막한 도시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도시에 색을 입히는 ‘환경색채 디자인’, 그리고 마을과 골목길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는 ‘도시벽화’는 회색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도시내 녹지·수변공간의 자연 색채와 함께 인공적으로 칠해지는 도시의 색채는 한 도시의 정체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의 정서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특히 광주시 서구 발산마을과 남구 양림동 ‘펭귄마을’, 경남 통영시 동피랑마을과 같이 마을 고유의 이야기를 품은 도시벽화는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콘크리트를 사용하며 회색도시 만들어져= 특유의 색채로 기억되는 도시들이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 섬의 주택들과 이탈리아 피렌체 건물들을 떠올려보라. 외벽이 온통 흰색 회벽으로 만들어진 산토리니와 주황색 지붕이 대부분인 피렌체의 이미지는 그만큼 선명하게 다가온다. 유홍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을유문화사 刊)에서 건축 구조기술과 재료 관점에서 설명한다.
“과거 도시에는 그 지역 그 시대에서 사용가능한 구조적 기술이 하나 밖에 없었다. 건축을 하기 위해서 구할 수 있는 재료도 지금처럼 교통과 유통망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기에 지극히 제한적인, 가까운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돌, 벽돌 등 동일한 재료를 사용해 인간의 노동력으로 가능한 ‘휴먼 스케일’의 건축물을 짓게 되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구조 기술적, 건축 재료적 제약들이 도시 DNA의 통일성과 조화를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며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를 활용함에 따라 이러한 건축 재료와 구조기술의 통일성은 깨져버렸다. 하늘을 찌를 듯 올려진 고층 건물 군과 성냥갑 또는 군대 막사처럼 열 지어 선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를 더욱 삭막하게 만들어버렸다.
환경색채 디자인에서는 무엇보다 ‘지역성과의 조화’를 중시한다. 이현수 연세대 주거환경학과 교수는 ‘도시색채 이야기’(선 刊)에서 “환경디자인을 어떻게 하여야 한다는 공식이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환경색채 계획을 위한 명확한 원칙이 없지만 주변 환경과의 조화, 주변 건물과의 관계성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환경색채에서 빼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건물은 한 개인의 재산이다. 그러나 동시에 건물의 외관은 사유재산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공공성을 띤다. 그렇기 때문에 건물의 외관은 정부의 규제를 받아야 한다”며 “지역적 특성이 있는 도시는 형태와 더불어 색채를 적절히 사용하였을 때 만들어진다. 그 도시에 생기가 넘치느냐 혹은 그렇지 않느냐는 형태보다 색체에 크게 좌우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요시다 신고(吉田愼悟) 교수는 ‘도시의 색을 만들자’(美세움 刊)를 통해 색채경관에 질서를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경관요소의 색채를 정리한다 ▲기조색(基調色)이 느껴지는 거리를 만든다 ▲색채의 조화를 가진 거리를 만든다 등 세 가지를 꼽는다.
그렇다면 광주의 환경색채 디자인 현주소는 어떠한가? 아파트 거주비율이 전체 주택의 80%를 넘는 광주 현실에서 아파트군의 무채색 또는 단조로운 그래픽 디자인이 광주 환경색채 디자인의 첫 인상을 좌우한다. 서광주 톨게이트를 통해 광주로 진입할 때나 제2 순환도로를 타고 우회할 때 보이는 광주 시가지는 아파트군에 둘러싸여 있다. 유럽 도시에서와 같은 통일된 색채는 느낄 수 없다. 충장로를 거닐면 건물보다 간판들이 시야를 압도한다. 광주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역색채, 도시색채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네와 골목길의 역사를 살려내는 ‘도시벽화’= 신안 압해도에서 바다를 시원스럽게 가로지르는 천사대교를 건너 암태도에 들어선다. 북에서 남쪽 방향으로 늘어선 자은도-암태도-팔금도-안좌도 4개 섬은 이미 연도교로 이어졌다. 암태도에서 자은도로 가려면 반드시 기동리 삼거리를 지나는데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차를 멈추고 기념사진을 찍는다. 그만큼 동백나무 두 그루를 머리카락 삼아 담벼락에 그려놓은 문병일·손석심 노부부의 얼굴벽화는 인상적이다. 번뜩이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된 일명 ‘동백 파마머리 벽화’는 신안 여행자의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광주 시내에는 미술사에서 의미 깊은 두 개의 벽화작품이 자리하고 있다. 전남대 용봉캠퍼스 사범대 1호관 동쪽 벽에 그려진 ‘광주민중 항쟁도’는 ‘광주 민중항쟁을 담은 최초의 벽화’로 평가받는다. 가로 10m, 세로 16m에 달하는 대형 벽화이다. 5·18 민주화운동 10주년을 맞은 1990년 6월에 전남대 그림패 ‘마당’과 예술대 미술패 ‘신바람’,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중심으로 벽그림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5일에 걸쳐 그렸다. 현재 벽화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색되고 훼손된 것을 2017년 6월에 복원한 작품이다.
또한 북구청사 벽면 상단에는 홍성담 화백의 민화 스타일 대형 벽화 ‘회복(回復)’이 그려져 있다. ‘1980년 광주 민중항쟁, 없어져버린 태봉산과 경양 방죽, 그리고 과학문명 속에 인간 중심의 미래 광주’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요즘은 도시벽화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통영 동피랑마을 등 앞서 성공적으로 정착한 지역을 너도나도 벤치마킹하며 개성과 예술성 없는 동네벽화가 남발된 때문이다. 지금도 관(官) 주도형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천편일률적인 벽화그리기가 성행하고 있다.
도시벽화와 같은 공공미술은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담아야 한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이다. ‘벽화마을’ 조성이 주민들의 쾌적한 주거환경을 보장하지 못한다. 언론매체에 소개되며 ‘핫 플레이스’로 널리 알려질수록 여행자들이 수없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최성용 계간 ‘걷고 싶은 도시’ 편집위원은 ‘우리가 도시를 바꿀 수 있을까?’(동아시아 刊)에서 관광객의 쇄도로 벽화를 지워버린 서울 ‘이화마을’과 철거대상지에서 벽화마을로 유명 관광지가 된 통영 ‘동피랑 마을’의 차이점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핵심은 ‘벽화마을 조성을 누가 결정했느냐’였다. ‘이화마을’ 주민들은 벽화마을 조성 결정 과정에 배제된 반면 ‘동피랑 마을’ 주민들은 벽화 그리기를 스스로 선택했다. 그런 만큼 문제 해결책도 스스로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벽화마을 조성에 앞서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주민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관심을 갖는 것, 마을 일에 주민이 참여하는 것,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을 조금씩이라도 살고 싶은 마을로 바꿔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주민들이 있는 마을에서는 사업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노력이 지속된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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