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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은기자

“조각가 권진규는 천착·몰입·진득함의 작가”

by 광주일보 2022.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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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 작가 ⓒ권진규기념사업회

형제는 외삼촌 권진규 조각가가 생을 마칠 때까지 한 집에서 지내며 그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봤다. 살아 생전 미술계의 냉대를 받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기에 사람들은 그를 ‘비운의 천재 조각가’라 부르곤 하지만 형 허경회(68) (사)권진규기념사업회 대표는 권진규에게서 “벌거벗은 몸통과 가지에 돋아있는 힘을 가진 겨울 참나무를 본다”고 했다. 또 1959년 김포공항으로 마중나간, 꼬맹이었던 자신을 위해 무릎을 굽히고 키를 맞춰 사진을 찍어주던 외삼촌의 모습에서 따뜻함과 깊은 배려심을 느낀다고도 했다.

권 작가의 아틀리에를 가장 많이 드나들었고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생 허명회(67) 고려대 통계학과 명예교수는 외삼촌에 대해 “자신을 잃어가는, 세속화를 경계하며 수도자의 모습으로 살아갔던 작가”, “학구적이었고, 철저한 기록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근로자처럼 작업했던 작가”라고 회상했다.

지금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권진규 작가가 “내 혼을 부어 만든 흙의 아들들”이라 지칭했던 작품들을 오롯이 만날 수 있다. ‘한국 리얼리즘 조각의 상징’ 고(故) 권진규 작가(1922~1973)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영원을 빚은, 권진규’전(10월23일까지)에서는 조각 작품 120여점과 아카이브, 드로잉 50여점을 전시중이다.

권진규 작가 첫 작품 ‘도모’ ⓒ권진규기념사업회

전시회 개막식 참석차 광주를 찾은 두 사람은 광주 전시에 앞서 열린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가 불교적 해석에 중점을 둔 데 반해 광주 전시는 ‘인간 권진규’에 초점을 맞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허 대표와의 인터뷰는 ‘조카’ 이야기로부터 시작됐다. 허명회 교수의 아들이자 그의 조카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해 화제가 된 허준이 수학자다. 그는 “나도 권진규 작가의 조카인데, 요즘 상을 받은 조카 덕에 인사를 많이 받는다”며 웃었다.

“서울 전시 때 직접 도슨트를 하기도 했어요. 전시장에 의외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오시더군요. 특히 전시장에 계속 반복해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사실, 권진규 작가의 애호 그룹이 그렇게 광범위하지는 않은 편이지요. 대신 많은 분들이 ‘깊게’ 마음을 다해 관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 광주 전시에서도 많은 분들이 오셔서 그의 작품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지만 관람자와 만나는 순간 그 작품은 완성됩니다.”

허 대표의 어머니 권경숙 여사 등 유족들은 권 작가의 작품을 모으려 애를 썼다. 권진규미술관을 설립해 준다고 해 맡겼던 작품들이 대부업체에 담보로 잡히는 수모를 겪었고, 2년여에 가까운 소송을 통해 다행히 작품을 온전히 회수한 유족들은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 작품을 기증했다. 작품은 내년부터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 상설전시될 예정이다.

“작품 기증과 더불어 우리는 더 이상 권진규의 유족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시민이 모두 권진규의 유족이지요. 전시장을 찾을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 감상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이제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그는 권 작가의 예술작업에 비해 체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그래서 이번 기증과 전시를 계기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의미있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내비쳤다.

권진규 작가 마지막 작품 ‘흰소’ ⓒ권진규기념사업회

이번 전시에는 권 작가의 첫 작품과 마지막 작품이 모두 나왔다. 첫 조각 ‘도모’(1951년경)는 일본 유학시절 만나 결혼한 아내 도모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며, 마지막 작품은 그가 사랑했던 이중섭의 ‘황소’에 대한 오마주 ‘흰소’(1972)다. 또 ‘십자가 위 그리스도’ 등 의미있는 작품이 많다.

“권 작가는 소년기부터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인습의 거풀이 돋지 않은, 원초적 눈으로 세상을 본 듯합니다. 아마도 이것이 훗날 그가 추구하고 정립하고자했던 리얼리즘 조각의 시발이 아닐까 생각해요. 예술가든 시인이든 학자든 무릇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만의 눈을 갖습니다. 독특한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새로운 존재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그는 평생 그런 눈으로 살았고, 매우 진득했던 사람, 담백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 중에는 대표작으로 꼽히는 ‘지원의 얼굴’을 비롯해 ‘애자’, ‘경자’ 등 인물상이 많은데 허 대표의 말처럼 매끈하고 반지르한 피부를 가진 조각상은 별로 없다. 허 대표는 “일부러 거칠게 표현한 그 모습이, 바로 작가가 본 인간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원을 빚은, 권진규’ 전에 참석한 권작가의 조카 허경희 (오른쪽) ⓒ권진규기념사업회

“권 작가가 힘든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하지만, 많은 예술가들이 그렇게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센세이셔널리즘에서 벗어나 작품을 뜯어보며 이야기하는 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만들어내는 게 자화상이고 자소상이죠. 그의 자소상을 보면 귀가 활짝 열려 있어요.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소상을 볼 때마다, 모든 것을 듣는 사람을 소원했는데 여의치 않았고 또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 않으면서 삶을 지탱하기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허 대표는 권작가를 표현하는 단어로 ‘몰입, 천착, 진득함’을 들며 “몰입하는 능력이야말로 재능”이라고 말했다.

2008년부터 기념사업회를 이끌고 있는 허 대표가 펴낸 탄생 100주년 기념 평전 ‘권진규’는 생생한 작가의 일대기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서울 권진규 아틀리에는 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시민문화유산으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고, 권진규의 일대기는 ‘명필름’이 다큐멘터리로 제작할 예정이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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