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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기자

광주 출신 오봉옥 시인, 해방 후 첫 민중항쟁 ‘화순탄광사건’ 조명

by 광주일보 2022. 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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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서사시 ‘붉은산 검은피’ 출간
1989년 발간후 33년만에 재개정
아픈 가족사 통해 뒤틀린 역사 조명

오봉옥 시인

서사시란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부분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창작한 시”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대개 신화나 전설 또는 영웅의 이야기가 주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고전적 의미의 서사시는 영웅의 전설이 구전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일반적이다. 고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영웅의 전설이나 신화 외에도 민중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창작을 한 서사시들도 많이 등장하는 추세다.

지난 1946년 ‘화순탄광사건’을 배경으로 한 장편서사시가 출간돼 화제다. 광주 출신 오봉옥 시인이 펴낸 ‘붉은산 검은피’(솔)는 제목만큼이나 강렬하면서도 묵직한 울림을 준다. 제주4·3항쟁과 여순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에서 해방 이후 첫 민중항쟁으로 알려진 ‘화순탄광사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당시 큰아버지가 화순 탄광 광부셨습니다. 더 늦기 전에 큰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뿐 아니라 당시 해방 이후의 굴곡의 역사를 장편서사시로 구체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시인에 따르면 화순탄광사건은 미군정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처음으로 민중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초 시집은 지난 1989년 처음 출간됐고 이번에 전면 개편해 개정판이 나왔다. 시집 출간 이후 1990년 시인은 ‘이적출판물’ 제작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는 등 필화를 겪었다.

일반적으로 ‘탄광’하면 검은산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시인은 ‘붉은산’으로 치환해 죽음의 의미를 강렬하게 상정한다. 아울러 붉은피 대신 ‘검은피’로 표현해, 그날의 참상과 아픔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33년 만에 시집을 재개정 출판한 것에 대해 오 시인은 “시집의 첫 출간과 잇따른 판매금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러 복간한 지금까지의 과정은 어쩌면 우리 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언급한 대로 시인의 큰아버지는 당시 화순 탄광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일을 했다. 이번 시집에서 주인공 ‘석’이는 큰아버지로 치환된다. 시인에 따르면 당시 사건이 일어난 해는 1946년이다.

“해방 1주년을 기념하는 1946년 광부들은 광주역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참가하기 위해 3000명 정도가 열을 지어 너릿재를 넘어갔습니다. 당시 미군정 때인데 미군이 막아섰지요. ‘미군이 좌익에서 개최한 기념식이니까 그냥 돌아가라’고 했나 봐요. 그러자 ‘광부들이 왜 우리를 막느냐’하며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결국 기념식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잔혹하게 진압을 하기에 이릅니다.”

시인은 당시 사망자가 20여 명, 부상자가 100여 명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평범한 광부들이 얘기치 않은 사건으로 좌익으로 몰려 억울한 죽음과 고통을 당한 것이다.

시인은 “개인적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큰아버지를 위무하는 데” 작품의 초점을 맞췄다. 현대사의 아픈 가족사를 통해 우리의 뒤틀린 역사를 조명하자는 취지였다.

“모르지/ 열두 살 석이는 모르지/ 범팽이 당촌아짐 집 밑에 거기/ 쬐금만한 오두막집 사는 석이는/ 아무것도 모르지/ 죽은 지 아비가 장가올 때/ 비지게에 검정 가마솥 하나/ 덜렁 싣고 온 것도/ 누가 볼세라 보릿대로 덮어서/ 몰래몰래 싣고 온 것도 모르지/ 모르지/ 지 어미가 시집올 때/ 비틀진 오가리에 된장 반쯤 담아와서/ 몰래몰래 살아온 것도 모르지”(‘제1장’ 중에서)

큰아버지의 일생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불우한 시대가 낳은 희생양이었다. “지주가 자신의 아들을 징용에 보내지 않으려고 큰아버지를 대신 보냈다”는 말에서 당시 조선인들의 비참한 삶을 읽을 수 있다. 징용을 갔다 온 이후 큰아버지는 화순 탄광 광부가 된다.

그는 “당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지만 어떤 이들은 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됐다”며 “역사에 묻힌 ‘화순항쟁’을 시집으로나마 새롭게 복원하고 이를 토대로 역사적으로 평가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원식 문학평론가는 “이젠 터널이 뚫려 옛길로만 남은 이 고개는 1894년 농민전쟁 때 동학군이 죽은 동무들의 관을 끌고 내려왔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고 의미를 밝힌다.

이번 시집에는 ‘서시1’, ‘서시2’, ‘서시3’을 전면에 배치했는데 화순탄광사건 외에도 동학이나 독립운동, 5·18 때 죽어간 이들을 다룬 내용 등이 등장한다. 서사시의 가장 핵심은 ‘서시3’으로 일종의 씻김굿에 해당한다.

임우기 평론가는 시집에 대해 “서사무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반제 민족해방투쟁에서 산화한 탄광노동자들과 전라도 화순 지역 주민들의 넋을 위무하는 진혼가”라며 “도도한 민중사의 흐름 속에서 반제국주의 이념의 현재적 의의를 되새기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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