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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병4

구한말 외로운 전쟁에 나선 의병장들 <12> 최고의 전공을 남긴 ‘안담살이’ 안규홍 일본군 맨손으로 때려잡은 머슴 의병장 ‘호국의 별’ 되다 보성 우산리 출생…가난·굶주림으로 머슴살이 편모 봉양 순천·고흥·보성·화순서 활동…일본군 수비대 교전·습격 1911년 31세 나이 순국…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한말 의병은 임진왜란 의병, 병자호란 의병보다 외로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보인 19세기 말부터 1910년 8월 경술국치까지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 또는 비협조 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광주일보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한말 남도 의병장은 기우만, 기삼연, 고광순, 심수택(심남일), 임병찬, 전수용, 이기손, 박영근.. 2022. 4. 30.
구한말 외로운 전쟁에 나선 의병장들 <8> 유격전술의 달인 의재 박영근 매복·기습 신출귀몰…불갑산·석문동 전투 일본군 타격 함평군 나산면 수상리서 가난한 선비 셋째 아들로 태어나 19세에 혼인하자마자 의병 가담 결의 젊은이들 모아 거병 호남창의맹소 종사·대동창의단 호군장 맡아 군수품 보급 밀정 김현규 밀고로 일본군에 체포 1910년 형장의 이슬로 한말 의병은 임진왜란 의병, 병자호란 의병보다 외로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가 한반도 침략의 야욕을 보인 19세기 말부터 1910년 8월 경술국치까지 일본군의 치밀한 추적과 현대식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공격, 조정의 외면 또는 비협조 속에 재래식 무기를 들고 소수의 병력으로 맞서 오로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광주일보 의병열전(1975.12.1~1977.7.21)에서 다룬 한말 남도 의병장은 기우만, 기삼연, 고광순,.. 2022. 3. 6.
[구한말 외로운 전쟁에 나선 의병장들] 면암 최익현과 거병한 돈헌 임병찬 “멸망의 기로에 선 나라와 생사를 같이 하자” 을사조약 후 전북 태인 무성서원서 함께 의병 일으켜 순창전투서 일본군과 격전하다가 붙잡혀 서울로 압송 최익현, 옥사에서 순국…임병찬, 거문도 유배 중 숨져 “영특하고 호기롭게 뛰어났건만, 하늘을 만나지 못해 어쩌다 오늘날 이 먼 바다 건너왔는가. 다행히 선생 모셔 이 길을 함께 하니, 천년에 꽃다운 이름 청사에 빛나리.” 을사조약 후 전북 태인에서 면암 최익현과 함께 거병해 싸우다 대마도까지 붙잡혀 간 임병찬에 대해 동지 고석진이 지은 시다. 병찬은 1851년(철종 2년) 2월 5일 전북 옥구군 사면 상평리 남산 아래서 아버지 임용래와 어머니 왕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임용래는 42세에 얻은 병찬을 애지중지해 세살부터 인근 서당에 보내 글을 익히게 했.. 2022. 1. 16.
호남 길목 석주관에 올라 왜적 막아선 ‘구례 7의사’ 新 호남 의병 이야기 임란 의병장, 그들의 거병과 최후 ② 보성 출신인 삼도 임계영(70세에 사망)은 48세의 늦은 나이에 별시문과에 급제해 3년간 경북 진보현감으로 재직하다 초야에 묻혀 병법과 무예를 공부했다. 64세의 나이에 임란이 발발하자 “내 죽을 바를 얻었도다”라며 1592년 7월 20일 거병해 전라좌도의병장에 올랐다. 경북 성주성을 수복하는 등 영남 일대 왜적들을 소탕했으며, 1594년 4월 김덕령의 충용군에게 의병을 넘겨주고 귀향했다. 1597년 10월 27일 화순 모후산 유마사에서 생을 마감했다. 도탄 변사정(67)은 남원 출신으로 군량미와 무기를 모으는 의곡청을 설치해 고경명, 김천일 등을 지원했다. 1592년 7월 고경명 사망 소식을 듣고 64세의 나이에 거병하자 양사위, 정소, 양추,.. 2021.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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