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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17

[서효인의 ‘소설처럼’] 솔직하고 유려하기 -임지은 산문집 ‘헤아림의 조각들’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에세이는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 형식의 글을 뜻한다. 여기서 일정한 형식은 아마도 시나 소설, 희곡이라는 장르의 문법을 이르는 말일 터다. 즉 에세이는 장르라는 외피를 던지고, 작가의 느낌이나 체험을 쓰는 글이다. 하나 느낌이나 체험을 쓰는 글이라는 말로 에세이를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거의 모든 글은 각자의 느낌이나 체험이 재료가 되니까. 일기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글도, 노트 구석의 낙서마저도 그렇다. 그것들 모두를 에세이라 부르게 주저함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에세이에는 위의 글과는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그 특별함은 솔직함과 유려함의 균형에서 비롯될 것.. 2023. 6. 17.
[서효인의 ‘소설처럼’] 버릇 고치기 프로젝트 -밤코 ‘배고픈 늑대가 사냥하는 방법’ 속담이 대체로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다. 그래서 둘째 손가락에 생긴 거스러미가 못내 신경 쓰이는 것이다. 저거, 앞니로 물어뜯은 것 같은데, 한번 물어뜯으면 계속 물어뜯게 되는데, 삐죽 솟은 거스러미가 불편해서 또 물고, 그걸 물어서 거스러미는 더 생기고… 그래서 마흔이 되어서도 거스러미를 입에 대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게도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아홉 살이나 열 살부터였을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악질적이었던 폭력 선생이 담임이었는데, 그때 생겼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여섯 명의 담임선생님이 있었는데, 그 선생의 이름만 기억에 남았다. 손톱도 그 기억의 질감을 닮아 내내 .. 2023. 3. 25.
[서효인의 소설처럼] 구도의 애도 - 유영은 외 ‘구도가 만든 숲’ 최근 출간된 신예 작가 단편 앤솔러지의 표제작이자 신인 작가 유영은의 신작 단편인 ‘구도가 만든 숲’은 꽤 의뭉스러우나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인 ‘구도’를 바라보는 화자 ‘나’의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방에 위치한 J시에 사는 구도는 몇 년 전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냉면집의 주인이 작년에 죽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고는 그 소식을 알려준 옛 아르바이트 동료인 나를 무작정 찾아온다. 나는 죽은 사장님의 조카로 그 가게에서 계속 일하고 있다. 일상은 전과 같다. 여름이면 매일을 허둥지둥 보내지만, 성수기가 지나고 겨울이 오면 “여분의 시간에 목이 졸리는 것”을 느끼며 그저 버틸 뿐이다. 그런 나에게 구도의 방문은 뜻밖일 수밖에 없다. 그는 단기 아르바이트 노동자에 불과했고, 이모의 조카라거나 친인척이 아닌데다 .. 2022. 11. 5.
[서효인의 ‘소설처럼’]어떤 비관 - 안녕달 『눈, 물』 어떤 상실은 운명이다. 우리는 대체로 정해진 운명을 따르되, 그 따름의 과정을 애써 잊고 산다. 죽음이 특히 그렇다. 모두가 언젠가는 죽겠지만 죽음의 공포에 질려 일상을 해칠 수는 없다. 죽음보다는 삶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거대한 상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애도가 전부이고, 애도의 기간이 끝나면 다시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 제대로 애도할 수 없다면, 되돌아올 삶에 죽음은 영향을 미친다. 상실의 불안이 우리를 잠식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제대로 잊기 위해서는 무결에 가까운 애도가 필요하다. 실컷 울어도 좋고, 마음껏 추억해도 좋다. 울음과 추억 속에 상실된 그것을 향해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 드러날 것이기에. 안녕달 그림책 『눈, 물』은 예정된 상실 앞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의 이야기이자, 어른.. 2022.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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