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총알이 주방 유리창을 뚫고 맞은편 벽에 꽂혔다.….난데없이 등에 뭐가 꽉 박히며 코와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아침 6시 30분경)”
1980년 5월 당시 전남대 2학년생으로 당시의 참혹함과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김윤희씨 일기장에 적힌 내용 일부다.
김씨는 40년 전인 19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 진압작전인 ‘상무충정작전’ 때 본인이 경험한 내용을 일기장에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전일빌딩 뒷편인 YWCA 건물 안에 있었던 김씨의 일기장에는 ‘새벽 3시께 전남도청에서 “광주시민이여 계엄군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도청으로 모여주십시오”라는 여성의 방송을 들었다’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새벽 4시 30분께 큰 폭음에 잠이 깼지만 도망을 가지 않고 YWCA에서 밥을 앉히고 있는 순간, 총격을 경험하고 총알에 맞기까지 했다’고 썼다. 일기장에는 ‘총알에 맞는 순간, “아! 맞았구나. 하지만 난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쓰여 있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지난 1980년 5월 당시를 기록한 광주시민의 일기장 14편을 기증받아 29일 공개했다.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올린 주소연·조한유·주이택&조한금씨 등이 쓴 일기장도 포함됐다.
1980년 당시 동산국민(초등)학교 6학년이던 김현경, 주부 김송덕과 강서옥, 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에서 사망한 문용동 전도사, 직장인 박연철, 전남대 사범대 4학년이던 이춘례씨 등의 일기장도 기증돼 파일 형태로 시민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40년 전 고등학생, 대학생, 직장인과 주부 등 시민들의 일기장에는 지난 1980년 5·18의 진실과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가 담겨 있었다.
끔찍한 당시 상황을 하루하루 기록하는가 하면, 모든 상황이 종료된 이후 한꺼번에 쓰거나 기록으로 남겨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쓴 일기장도 있다.
서석고 3학년이던 장식씨는 5월 당시 상황을 일기장에 매일 정리해놓았다.
장씨는 일기장에 ‘5월 26일 광주은행 본점 앞으로 오니 총성나고 있었고 마이크를 들고 있던 대학생이 왼팔에 총을 맞고 쓰러지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썼고 또 ‘목에서 피가 난 사람도 있었고 군인들이 총을 쏜 것 같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바로 후방에서 총성이 들려 겁이 나 달려 목으로 빠져 나왔다’고 적었다.
장씨는 일기장에 1980년 5월 31일 광주시내에 위치한 탱크·군인·장갑차 위치를 직접 손으로 그려넣은 약도와 5·18당시 상황을 알리기 위한 호소문도 적어놓았다.
이미 ‘5·18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 기록물’로 등록된 조한유씨 부인 허경덕씨도 당시 써놓은 일기장을 기증해 공개됐다.
허씨는 당시 하숙집을 운영하면서 광주 상황을 메모 형태로 기록해놓았다. 일기장에는 ‘모든 통신망은 불통이고 흉흉한 소식만 무성하다’, ‘지나가던 사람도 죽고 장사하던 사람도 죽고 차타고 일가족이 지나다가 죽고 부상당하고 왜인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기록관측은 “오월 일기는 5·18을 경험하지 못한 현재의 젊은 세대에게 당시의 평범한 일반인들의 경험을 전달해주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역사 자료 뿐 아니라 시민들의 잊지 못한 기억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체계적으로 남겨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기증자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가짜뉴스를 보며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편, 이들 일기장은 오는 5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통해 다른 지역민들에게도 공개된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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