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사고 악순환 끊으려면 <하>유명무실 감리제도 바꿔야
감리 인건비도 발주처에서 지급
유일한 현장 안전장치 역할 못해
침하 사실 누락 등 형식적 감리
2년간 부실감리 벌점 600건이나
‘감리다운 감리’ 위한 환경 조성을
도대체 아파트 17개층이 무너질 정도로 부실하게 지어지는 동안 감리는 뭘 했을까.
‘광주시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사고’ 영상·사진을 지켜본 대다수 전문가들은 감리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현장에 상주했다면 콘크리트 양생 과정을 모를 리 없고 설계도, 안전계획서, 공사계획서대로 시공되는 지 챙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도 당시 현장에 상주 감리자가 있었던 사실을 확인한 상태로, 붕괴 사고가 발생한 만큼 시공이나 감리가 제대로 수행되었는지 책임소재를 따지는 중이다. 이미 현장 감리자 3명을 입건한 상태다.
건설업계에서 감리의 권한·역할은 대형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제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감리만 제대로 했다면”=21일 광주 서구청에 따르면 화정 아이파크 신축 공사를 담당한 업체는 경기도 용인소재 A 업체로, 아이파크 1·2단지 감리를 위해 상주감리원(건축감리 4명·기계감리 2명·총괄감리 1명) 7명, 비상주감리원(건축 1명·토목감리 1명) 2명 등 9명의 감리를 운영했다. 이들은 감리계획서를 토대로 타설되는 레미콘 양이 적절한지, 거푸집에 타설된 레미콘이 밀도 높게 공간을 채우는 지, 철근이 제대로 설치됐는지, 동바리를 공사계획서대로 세웠는지 등을 현장에서 지켜보거나 점검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아파트 17개층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만큼 현재까지로는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될만하다. 안전시공에서 감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형식적인 감리 의혹도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광주일보가 확보한 감리보고서에는 17개층이 무너진 201동 외에 203동 39층에서도 콘크리트 타설 중 바닥 일부가 주저앉아 공사를 중단했다는 내용은 빠져 있었다. 경찰이 당시 바닥 슬래브가 내려앉아 공사를 중단했다는 작업자 증언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허술하게 감리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지난해 12월 말까지 골조 공사를 마무리한다는 공정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올해 초 눈이 내리는 날씨에도 콘크리트 타설 공사를 진행했는데도, 감리보고서에는 공정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계획(60.3%) 대비 실적(62.6%)로 계획 대비 103.8%가 달성됐다고 기록, 형식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현대사업개발이 애초 승인받지 않은 공법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점도 감리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감리업체인 A사는 2019~2021년 사이 2차례 벌점을 부과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벌점 부과 사유는 ▲시공사의 건설안전관리 확인 소홀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었는지에 관한 단계별 확인 소홀 등 부실 감리가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A사 뿐 아니다. 감리회사들이 최근 2년 간 부실 감리 등으로 벌점을 부과 받은 횟수만 약 600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부터 올해까지 벌점을 부과 받은 감리회사도 200여곳에 이른다.많은 곳은 2년 간 20차례나 벌점을 받았다. 정확한 사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부실 감리를 벌점 부과의 원인으로 국토교통부는 보고 있다. 광주시 동구 학동 철거건물 붕괴사고 때 감리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고 선정 과정도 부적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감리의 역할·처벌 강화하는 환경 서둘러야= 감리의 감독 기능이 사라졌고 발주처의 눈치만 보는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민간주택건설 공사의 경우 사업을 시행하는 사업주체가 감리자와 계약을 맺고 대가를 지급하는 형태로 감리가 이뤄진다. 이 때문에 사업주체와 시공자를 감독하는 감리자 업무가 소홀히 될 우려가 높다. 감리가 ‘을’의 위치여서 ‘갑’인 기업의 의사를 무시하고 독립적인 감리를 실시하기 쉽지 않은 구조라는 얘기다.
최명기 동신대 교수는 “국내 건설 현장은 감리가 너무 열심히 일하면 짤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며 “발주처나 시공사 입장에서는 빨리 공사를 끝나야 돈을 벌 수 있는데, 감리가 공사중지를 내리거나 공사에 태클을 걸게 되면 좋아할 시공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감리 인건비 조차 발주처에서 지급하는데 어느 감리가 발주처나 시공사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하겠느냐. 감리가 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실 감리에 대한 강력한 처벌도 동반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 2013년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남단 접속도로 붕괴 사고 때도 법원은 감리 2명에게 집행유예(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2년)를 선고했었다.
지난해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 참사’ 이후 정부는 해체공사에는 감리가 상주해야 하며 해체공사 시 착공신고를 하도록 해 실제 공사 착수, 지정 감리와 계약 여부 등을 확인하도록 했다. 아울러 감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건설안전특별법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다.
노동계는 그러나 입법과 대책도 중요하지만 만연한 부실 감리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송성주 건설노조 광주전남지역본부 사무국장은 “처벌 강화도 중요하지만 감리가 문제점을 발견했을 때 공사 중지를 강력하게 외칠 수 있도록 현장이 변해야 감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ms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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