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책 100년…삽화의 역사 속으로
100년 전만 해도 책은 특별한 이들의 소유물이었다. 당연히 어린이책에 대한 개념은 거의 없었다.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라는 어휘와 지위가 통용되면서 어린이 인쇄물이 비로소 제작됐다. 그러나 그림책이나 삽화 인쇄물의 체계적인 자료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년한반도’는 어린이책 최초 자료라 할 수 있다. 어린이 잡지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1906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모두 6권이 발행됐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소년 잡지’라는 게 일반적인 정설이다.
어린이책에서 시각적 요소는 육당 최남선이 발간한 ‘아이들보이’(1913년 9월~1914년 8월)에서 등장했다. 제호가 말하듯 “‘아이들’과 ‘보이다’라는 보조동사에서 ‘보이’를 따와 아이들이 보는 잡지”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44
책은 국판 크기의 40여 쪽 분량이다. ‘책거죽’ 그림을 유명한 화가에게 맡긴 점이 특징이었다. 백마를 탄 장수 아래에는 호랑이 얼굴이 있었고 위쪽에는 ‘아이들보이’ 활자가 사각형 모양으로 씌어 있다. 본문 그림은 “목각으로 새겨서 삽화의 기능을 하게 했고 패턴화된 문양이 동시에 사용되면서 활자들과 조화를” 이룬 점이 특징이다.
우리나라 그림책 역사를 정리한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어린이 서점 ‘동화나라’ 주인장이자 그림책 관련 글을 쓰는 정병규가 저자다. 자칭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는 그는 지금까지 ‘우리 그림책 작가를 만나다’를 펴냈다. 특히 동네책방들 연대 모임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으로 일하며 동네책방이 처한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저자가 이번 책을 펴낸 것은 그림책에 대한 ‘제자리 찾기’ 일환과 무관치 않다. “출판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나라에서 그림책은 마치 집은 존재하지만 주소가 없는 무적자 형편에 놓여 있다. 이렇게 제자리를 못 찾는 그림책에 대한 체계적인 통계와 지표, 평론의 공간이 시작되어야 한다.”
저자는 어린이 대상 순수 아동잡지로 방정환이 중심이 돼 만든 ‘어린이’를 꼽는다. 개벽사에서 발행한 ‘어린이’는 1923년 창간됐지만 1935년 3월 정간된다. 이후 1948년 복간돼 1949년 12월호까지 통권 137호가 나왔다. 제호의 서체가 바뀌었고 삽화에도 사진이나 만화, 컷 등이 등장했다. 매호 평균 70쪽 분량이 발행된 데다 삽화, 활자 배치, 구성 등에 변화를 시도한 점이 눈에 띈다.
만화가들의 어린이책에 삽화을 그린 건 1920년대 중반부터다. 안석주의 ‘씨동이의 말타기’가 1925년에 등장했으며, 1927년에는 박천석이 ‘아희생활’에 ‘복동군의 탐험’을 연재했다.
‘어린이’ 이후 1945년 무렵까지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다. 40여 종 이상 잡지가 창간되거나 폐간됐다. 이 가운데 ‘우리들 노래’는 그림책 근원이라 해도 될 만큼 의미가 있다. 조선아동문화협회 공모 당선 동요들로 꾸려진 선집으로 모두 10편이 수록돼 있다. 각 편마다 그림이 그려진 ‘시 그림책’인데 특히 ‘우리 닭’은 암탉과 수탉, 병아리가 모이를 먹고 있는 장면을 담은 점이 이색적이다.
1949년에는 ‘어린이나라’와 ‘진달래’가 창간됐으며 1950년대부터는 ‘진달래’가 아동구락부로 바뀌어 출간됐다.
저자는 특히 홍성찬에 대해 가장 오랜 현역으로 활동한 기념비적 작가로 평한다. 홍 작가는 1964년 ‘새소년’ 8월호부터 2017년 타계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 가운데 ‘할아버지 시계’는 마지막 혼을 불태웠던 작품이다.
1960~70년대는 오늘날의 표지디자인처럼 한 화가가 정밀하게 그림을 그린 양상이 시도됐다. 50년 전 일이지만 “이 같은 수공업 방식의 명장면들을 한때의 경향으로 묻어두기에는” 성과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삽화 역사는 어린이책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렇게 어린이책은 100여 년 가까운 시간 문학과 벗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아울러 책에는 분야별 그림책을 비롯해 작업실에서 만난 이만희, 소윤경, 고정순 작가 등 인터뷰도 실려 있어 그림책을 다각도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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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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