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
말하는 사람 아닌 듣는 사람이 주인
품격 있는 삶 위해 말공부 필요
대권주자들 말 무겁게 생각했으면
유머가 살아나야 건강한 사회
말 많은 세상이다. 대권(大權)을 꿈꾸는 여러 정치인들의 입은 거칠다. 가시 돋친 말, 꼬리를 무는 말로 비수처럼 상대방을 찌른다. 그 역시 되돌아오는 말로 인해 곤욕을 치른다. 최근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펴낸 강원국 작가(前 대통령연설비서관)를 만나 ‘말공부’에 대해 들었다.
◇“설득 수단으로 ‘인간적 신뢰’(Ethos)가 가장 중요”=강원국(59) 작가는 지난 5월에 6번째 저서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웅진 지식하우스 刊)를 펴냈다.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말공부’라는 부제를 붙인 이번 신간에서 작가는 진정성이 실린 ‘말하기’에 대해 얘기한다.
이번 책은 지난해 2월부터 올 3월까지 1년여간 KBS 1라디오에서 진행했던 ‘강원국의 말 같은 말’ 원고에 새 내용을 추가한 것이다. 신간은 출간 4개월여 만에 4만5000여부가 팔렸을 정도로 독자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소통’으로 전환되면서 말 또는 글로 내용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말하기와 글쓰기는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말은, 말하는 사람이 주인이 아니고 듣는 사람이 주인입니다. 내가 어떻게 말했느냐 보다 (상대방이)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고 나서 ‘진의가 그게 아니었다’ ‘네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었다’ ‘곡해했다’ 이러는데 사실은 말하는 사람의 책임인거죠. 듣는 사람이 대장입니다. 듣는 사람이 그렇게 들었다고 그러면 그렇게 말한 거죠. 그래서 참 말하는 게 어렵죠.”
말을 잘 한다는 것,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작가는 신간에서 ‘말은 듣는 사람의 것’이라고 표현한다. ‘말하는 것을 결국 듣는 것’이라 한다. 유연하게 듣고 단단하게 말하라고 조언한다.
“말은 듣는 사람이 주도권을 쥔다, 어떤 말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들었느냐가 중요하다.”
또한 작가는 ‘말재주’보다 ‘말의 진정성’을 강조한다. 머릿속 생각과 말이 일치해야 함은 물론 말속에 ‘듣는 사람을 위하는 마음’과 ‘듣는 사람을 아끼는 마음’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Logos’(논리적 설명)와 ‘Pathos’(정서적 호소), ‘Ethos’(인간적 신뢰)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3가지 설득 수단이다. 그는 이 가운데 ‘에토스’(인간적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작가는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받는데 대해 업무에 대한 열정과 한 사람이라도 희생자를 줄이고자 하는 ‘진정성’에서 원인을 찾는다. 정 청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간적 신뢰’가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말에 설득되는 게 아니라 사람에 설득된다는 거죠. 그 사람을 보고 내가 설득 당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거죠.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자체가 설득력이라는 거죠. 그러려면 잘 살아야 됩니다. 말보다 먼저 사람이고, 그 사람의 삶은 어땠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이죠.”
◇“유머는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비곗살”=강원국 작가는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에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에피소드를 들며 유머가 부족한 한국정치판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1984년 재선 도전당시, 민주당 후보가 레이건의 최대 약점인 나이(73세)를 걸고넘어지자 레이건은 이렇게 응수했다.
“저는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이슈로 삼지 않겠습니다. 상대방이 너무 어리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작가는 유머를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비곗살’, ‘(고기를 연하게 하고 육즙을 보존하는) 소고기의 마블링’, ‘실없는 소리가 아니라 실속 있는 소리’라고 비유한다. 그래서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 말을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며 “김치찌개에 비곗살이 없으면 맛이 없는 것처럼 앞으로 우리 정치도 그렇게 돼야 하고,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유머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만들어가는 힘이 일부 집단에 편중되어 있는 사회, 언론과 정치와 권력기관이 말을 장악하고 있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힘 있는 사람끼리 은밀한 말을 주고받으며 자기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한다.”
신간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를 읽다가 눈에 띈 구절이다. 작가는 말을 통해서도 직장과 사회의 공정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윗사람 명령에 아랫사람이 그대로 따르는 수직적인 문화의 직장과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등하게 말할 수 없는’ 사회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강 작가는 10년 남짓 청와대에서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는 ‘스피치 라이터’로 활동했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 연설문을 쓴 사람이 아니고, 대통령께 연설문 쓰는 법을 배웠다’라고 겸손하게 표현한다.
작가는 지금은 강연과 방송 등 말로 먹고 살지만 학창시절이나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는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 했다고 한다. 두 대통령의 말글(연설문)을 쓰는 업무가 나중 보니 ‘말 배우는 견습생’으로 살은 셈이었다. 말로 먹고 살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는데 결정적인 두 번의 계기가 그를 말 잘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나중에 오진으로 판명 났지만 50대 초반에 암 선고를 받은 것과 첫 책 ‘대통령의 글쓰기’가 잘 팔린 것이다.
◇“말과 글이 살아있는 사회가 열린사회”=강원국 작가는 지난 2014년 2월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 刊)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고스트 라이터’였다. 출간된 지 2년 후 2016년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실체가 드러나며 책은 더욱 불티나게 팔렸다.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순실의 취미는 대통령 연설문 고치기’라는 증언이 나오면서 대통령 연설문 작성과정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 200쇄 이상을 찍었고 40만부 이상이 팔렸다. 작가는 2017년 낸 ‘대통령의 글쓰기’ 개정판에 덧붙인 서문에서 국정농단 원인을 말과 글로서 진단한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명하다.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도자와, 그런 지도자 아래서 침묵으로 자리를 연명하려 했던 참모들의 합작품이다.”
그리고 “우리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말과 글이 살아나야 한다”면서 “말과 글이 살아있는 사회가 열린 사회”라고 강조한다.
강원국 작가는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를 시작으로 ‘회장님의 글쓰기’(2014년), ‘강원국의 글쓰기’(2018년)를 썼고 ‘나는 말하듯이 쓴다’(2020년), ‘강원국·백승권의 글쓰기 바이블’(2020년),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2021년)를 잇따라 펴냈다. 앞 ‘글쓰기 3부작’이 중국집 반죽이라면 이후 책들은 ‘강원국’만의 요리를 빚고 있는 것이다.
강 작가는 9월말부터 KBS 1라디오에서 인터뷰 프로그램 ‘강원국의 지금 이 사람’을 진행하고 있다.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보면 학생과 직장인으로 살았던 1단계는 듣기만 했고, 전업 작가로 나선 지금은 말을 하고 산다. 앞으로 어느 시점에서는 대가없이 남을 위해서 베풀면서 살 생각이다.
작가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대권(大權) 레이스에 뛰어든 정치인들에게 주는 한 마디를 부탁했다.
“말을 좀 무겁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말은 그냥 하는 거지. 그걸 가지고!’ 그게 아니라는 것을 나이 먹어서 깨달았습니다. 말도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 되고, 준비를 해야 되고, 연습을 해야 됩니다. 말이란 것은 중요합니다. 정말 노력이 필요합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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