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 지음
다음은 누구를 말할까?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평안도 도사로 취임하러 갈 때 죽은 기생을 위해 술잔을 올렸다. 단종 복위를 꿈꾸다 죽은 사육신을 토대로 정치판을 힐난했다.’
바로 임제(林悌·1549~1587)다. 그는 죽음 직전에 “나를 위해 곡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의 문중 족보 ‘나주임씨세승’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고 한다. ‘물 오랑캐가 황제라 칭했는데 조선만 홀로 중국을 섬기니 살아서 무얼 하며 죽어서 한이 되리 울지 말라’
역사 속 인물들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역사는 사람들 이야기이며,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여 역사를 이룬다.
이 땅의 역사를 흔든 군상들의 이야기를 담은 ‘땅의 역사 3’은 역사 속 흥미진진한 인물들을 소환한다. ‘군상(群像): 나라를 뒤흔든 사람들’이라는 부제처럼, 그들은 “자기 시대를 살며 커다란 발자국과 짙은 그림자를 던진” 인물들이다.
저자는 30년 차 여행문화전문기자 박종인이다. 일간지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연재 중이며 지금까지 ‘땅의 역사’(1·2), ‘한국의 고집쟁이들’, ‘내가 만난 노자’ 등을 펴냈다.
책을 펴내게 된 이유는 이렇다. “필터로 맑게 걸러낸 ‘찬란한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에서는 그 필터에 남아 있는 찌꺼기들을 보려고 한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거나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은폐됐거나 왜곡돼왔던 참 많은 군상(群像)들의 민낯을 대면하려고 한다.”
책에는 조선시대 역사가 등장한다. 폭군 연산군에게 저항했던 시인 어무적을 비롯해 숙종에게 쓴소리를 했다 죽게 된 박태보, 농사짓는 기술 등을 연구했던 서유구와 같은 인물들이 주인공이다.
어무적은 연산군 시대 사람이다. 아버지는 양반이지만 어머니는 관비로, 그는 평생 변변한 벼슬 한번 못했다. 그러나 문장은 탁월해 동시대 허균에 의해 ‘동방 제일’이라 평을 받기도 했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살기 어려워라/ 흉년에 너희 굶을 때/ 나 너희 구하려는 마음은 있으나/ 구할 힘이 없구나/ 사람들아 사람들아 불쌍도 하여라/ 추운 날 이불도 없는 너희들인데/ 저들은 너희 구해줄 힘은 있되/ 구하려는 마음은 없구나”(신용개, ‘속동문선’ 권5, ‘유민탄’)
연산군 시대 백성들의 삶은 비루했다. 절대적인 빈곤, 폭정이 원인이었다. 어무적이 상소를 올려 ‘근본을 바로 잡고’, ‘여자와 술을 멀리하여 백성들 재물을 넉넉하게 하고’라고 권했지만 허공에 흩어지는 메아리였다. 결국 어무적은 관리들을 피해 도망다니다 객지에서 죽음을 맞는다.
전설이 된 행정가 이서구(1754~1825)의 삶은 공무를 수행하는 이들이 한번쯤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1793년 이서구가 첫 번째 관찰사를 수행하던 무렵 그는 세금을 거두는 대신 창고를 풀어 구제에 힘썼다. 1820년 두 번째 전라 관찰사로 부임했을 때는 ‘양전은 백성 구휼을 위함이지 나라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증세를 요구하는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맞섰다.
이밖에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 새로운 학문에 눈을 뜨고 이후 조선을 발전시키려했던 소현세자와 강빈 부부를 비롯해 일찍이 서양 학문을 접하고 책을 냈지만 이해받지 못한 홍대용, 엄혹한 사대의 시대에 살면서도 그림을 통해 자기세계를 지향했던 화가 정선의 이야기도 만난다. 또한 완벽한 준비로 울돌목,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이순신과 각성(覺醒)이라는 화두를 던졌던 시인이자 독립운동가 한용운의 생애도 접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책속의 인물들은 자기 시대를 살며 발자국과 그림자를 던졌지만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과 깊이는 다르다고.
“하루 살기 바쁜 우리네 인생이 어느 짬에 역사에 남을 만큼 소인배적 악을 저지르고, 대인다운 행동을 할 것인가. 다만 우리는 큰 악을 저지른 소인배에 대해 비난할 줄 알고, 큰 선을 행한 큰 사람에게 박수를 보낼 줄 안다.”
<상상출판·1만6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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