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등단 55년 ‘달을 긷는’ 작가 한승원]
25년전 고향으로 내려와 해산토굴 지어
내 시와 소설의 8할은 바다
딸 한강 작가 한국인 첫 맨부커 상
부녀 ‘이상문학상’ 수상 진기록
대 이어 아들·딸도 소설·시 쓰는 문인 가족
“나는 시 한편, 소설 한편 쓰는 일을, 이 우주에 꽃 한 송이로써 장엄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등단 55년을 맞은 한승원(82) 작가는 고향 장흥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해 원초적 생명력과 신화(神話), 인간 실존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소설과 시를 치열하게 써오고 있다. 최근 자서전 ‘산돌키우기’(문학동네 刊)를 펴낸 작가를 만나 문학 인생과 작품세계에 대해 들었다.
◇25년전 귀향해 ‘해산토굴’ 지어=장흥 태생인 한승원(82) 작가는 25년 전인 지난 1997년 가을, 과감하게 ‘서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장흥군 안양면 사촌리 율산 마을에 창작공간인 ‘해산토굴’(海山土窟)을 지었다. 한덕산(해발 200m)을 병풍삼은 토굴 마당에 서면 수문포(水門浦)와 득량만, 득량도, 멀리 고흥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해산토굴’ 주차장에 들어서자 ‘선경’(禪境)이라 쓰인 삼각형 비석이 첫눈에 들어왔다. 비석옆 몇 개의 돌계단을 올라서면 ‘견월정’(見月亭)과 ‘달 긷는 집’(汲月庵)이 있고, 그 위쪽에 작업실인 ‘해산토굴’이 자리하고 있다. 해산(海山)은 작가의 호로, ‘짙푸른 심해 속에 암초처럼 발달한 비가시적인 숨어있는 산’을 의미한다.
작가는 4번째 시집 ‘달 긷는 집’(2008년)에 실린 ‘지네와 새우젓-사랑하는 나의 허방4’에서 “내가 허름한 토굴하나 짓고 사는 까닭은/ 빠듯하고 음음한 시공에 나를 위리안치시키고 삶과 글을 곰삭히려 함인데”라고 표현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유배온 죄인이 배소에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로 둘러싸인 집안에서만 지내도록 하는 형벌을 뜻한다. 집을 낮춰 굳이 ‘토굴’이라 이름붙인 것은 ‘타의에 의해 갇혀 살면서 독서와 저술을 통해 최고 최대의 향기로운 자유를 챙취한’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처럼 살겠다는 작가의 단호한 의지가 담겨있다.
-‘견월정’(見月亭), ‘달 긷는 집’(汲月庵) 작명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원각경(圓覺經)’에서 가져온 견월은 ‘달을 보라면 달을 볼 것이지 왜 손가락만 보느냐’, 진리를 보라는 말이죠. 달을 긷는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연유가 있습니다. 이태백이 호수에 빠져있는 달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걸 건지러가다 죽었다 그런 설화가 있는데 달(진리)을 추구하다가 죽었다는 얘기도 되거든요. 그리고 선승(禪僧) 얘기를 들어보면 노스님 모시고 사는 어떤 젊은 스님이 물을 뜨러 갔는데 옹달샘에 달이 빠져있어요. 바가지로 물을 뜨니까 달이 떠졌어요. ‘내가 달을 길었다’, 어떤 환희심 같은 것이 일어난 거죠. 물을 들고, 달을 들고 암자로 들어오니까 달이 없어져 버렸죠. 동시에 마음속에 느꼈던 어떤 환희심까지도 사라지고 절망하게 됐어요. 노스님이 ‘이놈아! 원래 없던 거다’라고 얘기했는데도 젊은 스님은 슬피 울다가 죽었다는…. 그러니까 ‘우리 삶의 구경(究竟·참삶의 길)을 길어가는 집이다, 그걸 느끼고 가는 집이다’, 그래서 ‘달 긷는 집’이라고 지은 거죠.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2018년)에서 ‘나는 9년 전에 서울을 버리고 장흥 바닷가에 토굴을 짓고 그 안에 나를 가두고 사는데 나는 그것을 다산에게서 배운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서울을 떠나’가 아니라 ‘서울을 버리고’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어감의 차이겠는데 ‘서울을 버렸다’고 하는 것은 도회적인 삶을 버렸다는 얘기죠. 서울에서 살면 서울사람이 돼야 돼요. 격식에 맞게 시간 딱딱 정해가지고 서울사람들만의 사는 거 그게 세련된 건데 세련된 삶을 살려면 늘 긴장해 있어야 하잖아요. 서울은 모든 것이 속도감 속에서 살아야 되니까, 늘 긴장하고 살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사람이 마르더라고요. 내가 이대로 살다가는 오래 못 살겠다 그래서 과감하게 내려온 거죠. ‘서울 버리고 내려간다’ 그러니까 나를 서울살이에 실패한 것처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다 나를 부러워해요.(웃음)”
◇“내 시와 소설의 8할은 바다”=작가는 자서전 ‘산돌 키우기’를 통해 ‘하늘복숭아같이 탐스러운 유자를 주워 치마폭에 담았다’고 하는 어머니의 태몽부터 장흥 바닷가 토굴에 내려와 다산(茶山)을 흠모하고 본받으며 살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80여년 문학인생의 궤적을 독자들에게 꼼꼼하게 들려준다.
작가는 고교 졸업 후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짓고, 김 양식을 하면서 시인·소설가를 꿈꿨다. 뒤늦게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해 김동리·서정주·박목월 선생에게 시와 소설론을 두루 배웠다. 1966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간척사업 인부를 소재로 삼은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3년 동안 김양식을 한 경험을 살린 ‘목선(木船)’이 당선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작가의 작품세계에서 ‘바다’를 빼놓을 수 없다. 작가에게 바다는 ‘총체적 우주, 우주의 자궁’이었다. 작가는 ‘꽃과 바다’(2016년)에 실린 조용호 소설가(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와 장일구 전남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와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 시와 소설의 8할은 바다입니다. 바다가 갖고 있는 에너지는 내 몸 안에 녹아 있다기보다 좌우간 어우러져 있는 하나의 생명력이에요. 바다는 내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관통하는 세계입니다.”
작가는 데뷔작인 ‘목선’에 대해 ‘나의 문학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는 이정표 같은 작품’(‘산돌 키우기’)이라고 했다. 대학동기인 소설가 이문구는 ‘한국문학’ 편집자로 일할 때 그에게 “왜 서울 것들 흉내를 내는 거야? ‘목선’같은 소설을 써라. 다른 친구들은 바다 이야기를 쓰고 싶어도 몰라서 못쓴다”고 조언했다. 초기 작품에서는 바다가 삶의 현장이었지만 점점 확장되며 나중에는 신화로서의 바다, 화엄(華嚴)으로서의 바다로까지 승화됐다. 1996년 펴낸 장편소설 ‘연꽃바다’를 전후로 작가는 휴머니즘, 인간주의에서 우주주의로 생각이 바뀌었다. 특히 그는 ‘산돌 키우기’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인 바다는 서정적인 시공이 아니고 산문적인 시공이고 신화적인 시공이다”고 강조한다. ‘시적 바다’와 ‘산문적 바다’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흔히 바다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바다를 서정적인, 시적인 공간으로 느껴지잖아요. 그건 구경꾼으로서. 그런데 산문의 바다라고 하는 것을 삶의 현장이에요. 아픔의 현장이죠. 바다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요.”
◇딸 한강 작가 “승어부(勝於父) 효도해”=작가는 “속박하는 것에 얽매이지 않는 나를 만들기 위해” 두 차례 스스로 ‘터닝 포인트’를 만들었다. 1979년 창작과 병행하던 교사직을 그만 두고 전업 작가로 나서며 1980년 서울로 올라갔고, 다시 1997년에 ‘자연친화적 삶’을 지향하며 서울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또한 작가는 소설과 시를 병행한다. ‘현대 선시(禪詩)의 한 모습을 선보인’ 첫 시집 ‘열애일기’(1991년) 이후 ‘꽃에 씌어 산다’(2019년)까지 모두 7권의 시집을 펴냈다. 수시로 시상(詩想)이 떠오를 때마다 스마트 폰에 메모를 해둔다. 작가는 ‘꽃과 바다’ 대담을 통해 시와 소설의 형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내 속에서는 늘 시와 소설이 길항작용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시적 감수성이 설화성을 갖고 서사로 나타나고, 서사로 나타날 수 없는 것들이 시로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
한승원 작가의 자녀(2남 1녀)들은 아버지의 문학적 DNA를 물려받았다. 큰아들인 한규호(필명 한동림)는 199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변태시대’로 등단해 소설집 ‘유령’(2004년), 장편소설 ‘달꽃과 등대’ 등을 펴냈다. 또한 받침글자가 전혀 없는 단어로만 구성된 ‘받침없는 동화’ 시리즈(10권)를 썼는데 한 작품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딸은 소설 ‘채식주의자’로 지난 2016년 5월에 한국인 최초로 세계 3대 문학상중 하나로 꼽는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한 한강 작가이다. 부녀(父女)는 ‘해변의 길손’(1988년)과 ‘몽고반점’(2005년)으로 문학사상사에서 주관하는 ‘이상 문학상’을 17년의 간극을 두고 2대째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작가는 ‘산돌 키우기’에서 ‘아들딸은 여러 의미에서 아비를 뛰어넘은 승어부(勝於父)의 효도’를 했다고 묘사했다.
작가는 요즘 오전 4시 30분께에 일어난 후 책을 읽고 수문포 여다지(여닫이) 해변으로 산책을 나간다. 해변과 나란한 종려나무 거리에는 ‘여다지 해변의 혼례’, ‘물보라’ 등 작가의 시비 30여기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귀가해 오전 중에 일정량의 원고를 쓴다.
작가에게 소설쓰기란 ‘하늘의 명령(天命)에 따르는 사업(事業·우주의 율동원리에 따라 천하의 인민에게 실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늘 “살아있는 한 글을 쓰고, 글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을 실천하려 한다. 작가적인 생명력과 생물학적 생명력은 두 개의 수레바퀴와 같다.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폐경상태’에서 비롯되는 노인 우울증도 오로지 글쓰기를 통해 극복한다.
한승원 작가는 어느 날 문득 닥칠 ‘세상과의 이별’을 연습한다. 토굴앞 마당 서편에 영혼의 쉼터가 될 석탑과 상석, 묘비명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묘비명은 ‘나무’라는 제목의 시다.
“푸른 우듬지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나무의 뜻을 천축국의 왕자가/ ‘나무’(南無)라고 읽으라 했는데, 나는/ ‘나 없음의 나무’(我无)/ 라고 어눌하게 소리 냅니다/ 그 이르고 싶은 곳 어디인가,/ 푸르른 내 고향 태허(太虛)입니다.”
/글·사진=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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