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 최광진 지음
한옥, 석탑,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막사발, 서예, 산수화…. 열거한 것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들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 자연과 연관돼 있다. 여기에는 자연에 대한 경외와 함께 그것에서 이상을 찾으려는 미의식이 투영돼 있다.
서양의 문화가 인간 중심적 문화라면, 우리의 전통문화는 자연친화적이다. 전자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후자는 인위성을 배제한 ‘무위자연’에 중점을 뒀다. 마찬가지로 서양 역사에서 인간과 자연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대상으로 그려졌다면 동양에서는 이상적인 조화로 상정됐다.
우리 조상들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풍류를 좋아했다. 속세를 떠나 산중에 은일하는 ‘죽림칠현’ 같은 중국식 풍류와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화랑도의 그것처럼 현세와 탈속의 극단과는 다른 ‘뭇 생명들과의 어우러짐’이었다.
‘한국의 미학’의 저자 최광진 홍익대 초빙교수는 우리의 미와 멋을 자연에서 찾는다. 인위적인 기교를 뛰어넘는 ‘천인묘합’(天人妙合)이라는 것이다. 그의 책 ‘기교 너머의 아름다움’은 자연과 인간의 친근한 접화(接和)를 중시했던 한국인의 소박미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가 말하는 소박미와 한국의 멋은 이런 것이다. 서양의 미가 “자연을 수학적으로 분석하여 얻은 인위적인 비례와 조화”라면 한국의 멋은 “자연과 인간이 개성이 접화된 상태”다. 다시 말해 인위적 기교를 초월하는 천인묘합의 경지가 우리의 미다. 그렇게 ‘소박의 미’는 인간과 자연의 상생에서 피어난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명당 터를 중요시했다. 정원을 만들 때 가급적 인위를 배격했는데 자연과 구릉과 풍광을 최대한 살려 조성했던 것은 그러한 이유다.
북경의 자금성은 주변에 산이 없다. 좌우대칭으로 계획한 탓에 인위적인 숭고함을 발한다. 이에 반해 우리의 경복궁은 자금성과 달리 소박하다. “산자락에 위치하여 주산과 좌청룡 우백호를 곧바로 체감할 수 있어” 조화를 느끼게 한다. 흔히 말하는 한국의 비보풍수는 자연을 그대로 살려 기운을 보해주는 방식이다.
정원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의 정원은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살린 지점에 정자와 누각을 세웠다. 대개의 경우 집터 뒤로는 구릉이 위치하는데 자연스럽게 후원이 된다. 시냇물이 흐르는 장소나 연못 인근에 정자를 짓고 자연을 즐겼다.
담양 소쇄원은 한국 정원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다. 당파 싸움에서 벗어난 선비가 자연과 벗하기 위해 지은 별서 정원이다. 봄이면 계곡 사이를 흐르는 물과 푸른 대나무, 그리고 사이사이 피어난 꽃은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저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한류의 원조를 도자기로 본다. 소박한 삶을 일궈온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이 발현된 문화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의지와 기교를 넘는 “자연의 일부인 흙과 소통하고 타협해야” 가능한 결실이다. 나아가 꾸밈없는 소박함이 오래도록 마음을 끄는 요인인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이자 미술사학자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불규칙 속의 규칙, 미완성 속의 완성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그가 전개했던 민예운동은 한국 공예품에서 받은 영감이 토대가 되었다.
문인화에도 자연을 탐한 소박한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왕실이나 귀족, 선비들이 그린 그림은 기교와는 다른 정신적인 특질이 배어나온다. 직업 화가들이 눈에 의존해 대상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문인화가들은 대상 내면의 기운을 포착했다.
매난국죽에 밴 군자의 덕성은 “자연과 공명하고 소통한 결과”다. 사실적인 외양이 아닌 의를 그리는 ‘사의’(寫意)가 문인화의 핵심이다. 매화에 몰입했던 조희룡은 매화 병풍을 치고 잠을 잤다. 매화를 흠모한 나머지 매화 관련 시를 짓고 매화차를 마셨던 선비다.
소박미의 경지는 무위자연이다. 자연과 동등하게 교류하고 조화를 이루고자 했던 의식의 발현이다.
<현암사·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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