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 죽음으로 본 업계 실태
기사에게 비용 전가…무급휴일 징계 받을까 울며겨자먹기 처리
준공영제 성과이윤 배분에 사고 숨기려 버스공제조합 이용 안해
불공정 관행 계속 답습…광주시 “음성 자부담 적발 어려워” 난감
시내버스 기사의 운행 중 교통사고 처리비용을 버스기사 개인에게 전가하는 ‘갑질’이 50대 버스기사를 극단적 선택〈광주일보 6월 23일 6면〉으로 몰고 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교통사고 처리비를 버스기사에게 덤터기 하는 행태는 업계의 불공정한 관행이지만 행정 당국의 무관심 등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는 대표적 악습(惡習)이라는 게 민주노총 등 노동계의 주장이다.
◇사고처리비 떠안은 버스기사들, 왜=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버스기사의 극단적 선택과 관련, 자동차 보험료율이 오르는 것을 막고 준공영제 지원금 배분을 위한 버스 평가를 잘 받기 위한 회사측 입장 때문에 버스기사들만 부담을 떠안으면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도 준공영제 지원을 받는 데 불리하게 반영될 교통사고 이력을 낮추거나 숨기려는 시내버스 회사가 버스기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노동계 목소리다.
노동계는 이번 사건 외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잇따랐다는 점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과 광주시 등 행정당국이 재발 방지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 광주전남지부에 따르면 A 시내버스 기사는 지난 4월 광주시 남구 봉선동 한 언덕길에서 정차 후 재출발하려다 버스 뒤에 바짝 붙어있던 화물차와 접촉사고를 냈다. 운행 중 사고지만 회사측은 ‘(버스기사가) 알아서 하라’는 취지의 입장을 전했고 결국 버스기사는 개인 돈으로 화물차 운전자에게 수리비용 60만원을 주는 것으로 사고처리를 했다.
B시내버스 기사도 지난 5월 광주시 광산구 송정리에서 커브길 운행 중 주차된 차량의 범퍼를 훼손하는 사고를 냈지만 개인 비용으로 사고처리를 마무리했다.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사측 말에 버스공제조합으로 처리하려는 마음을 접었다는 게 공공운수노조측 설명이다. C 버스기사도 최근 운행중 승객이 내린 것으로 생각하고 문을 닫았다가 들고 있던 물건이 문에 끼이면서 승객이 넘어지는 사고를 냈지만 자신의 돈으로 합의금을 마련, 전달했다는 게 노조측 얘기다. 버스운전기사는 사고로 인해 징계를 받으면 만근 수당을 받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회사측에 처리를 맡기지 않았다.
버스업계 노동자들은 사고를 낸 경우 회사측은 무급 휴일이라는 징계를 내리는데 이렇게되면 무급 휴가 기간 수입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무사고 수당(15만~20만원), 만근(50~60만원) 수당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토로한다.
2주 미만의 치료가 필요한 인명 피해 사고를 한 차례 낸 경우에만 ‘각서’를 내는 징계를 받지만 나머지는 모두 무급휴일(5~90일)로 징계를 가름한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100만원 미만의 차량 수리비가 드는 대물 피해 사고를 한 차례 냈을 경우에만 서류상 징계를 받고 나머지는 모두 무급 휴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무급 휴일 징계로 근무일수가 줄면 수입이 사라지는 만큼 일정 수준의 사고처리비의 경우 본인 부담으로 처리하는 게 낫다는 게 버스기사들 얘기다.
버스운전사가 운전 중에 낸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버스회사가 책임지거나 버스공제조합에 신고, 처리하는 것이 원칙인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버스회사는 왜 책임 미루나=회사측은 보험료를 줄이면서 준공영제로 인한 버스회사 평가로 받는 지원금을 많이 받기 위해서 이같은 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게 공공운수노조측 주장이다.
당장, 광주시의 준공영제버스 평가제도는 버스회사들의 성과 이윤을 배분하는 데 활용된다. 경영평가 항목(1000점 만점) 중 교통사고 관련 부문은 300점(차량보험요율 150점, 교통사고 보상액 150점)으로 그 비중이 매우 높으며 버스 회사들의 평가순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2019년 기준으로 가장 많은 배당금을 받은 버스는 586만원이고 가장 낮은 배당금을 받은 버스는 238만원으로 버스한대당 350여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준공영제 평가제도에서 평가 순위에 따라 인센티브가 수억 원까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사고 이력을 숨긴다는 것이다.
버스회사들은 인사상 불이익 때문에 기사들 스스로 부담한 것일 뿐 자부담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반박하지만 노동계에서는 자부담을 종용한다는 버스기사들 주장도 들린다.
사측이 비정규직 기사들에게 ‘정규직으로 전환 시 불이익이 있다’거나 ‘정규직이 되더라도 수습기간에 사고가 발생하면 해고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하면 운전기사들은 자부담 외 선택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지역에서 20여년 간 버스운전을 한 기사 C씨는 “대부분의 버스기사들은 경미한 접촉사고를 낸 경우 회사에서 자부담으로 유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1년에 1~2차례는 자부담으로 처리하는 게 업계 대부분의 관행”고 말했다.
김광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 광주·전남지부장은 “버스기사들의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일정 부분 경미한 사고가 버스기사의 생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너무 과도한 징계”라고 말했다.
◇광주시 버스기사에게 떠넘기는 행태 조사 나서야=광주시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2012년부터 1년에 한차례씩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버스운전기사들의 음성적인 자부담 처리를 적발하기 어렵다고 난감해하고 있다.
23일 광주시에 따르면 지난해 광주버스공제조합에 신고된 광주시내버스 교통사고는 총 599건이다. 이 중 대물사고는 264건으로 총 발생한 교통사고의 44%에 불과하다.
발생한 총 손해액은 대인은 23억 500여만원이고 대물은 5억 6100여만원 수준이다.
시내버스 교통사고 중 대물사고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는 경미한 교통사고를 버스운전기사를 통해 자부담 처리하는 것도 원인일 것으로 버스기사들은 추정하고 있다. 실제 교통사고는 발생했지만 서류상으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사고는 훨씬많다는 것이다.
광주시도 경찰서 사고 접수현황, 버스공제조합 보험접수내역, 운수회사별 정비대장 등을 확인해 운전기사에게 전가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하지만 적발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광주시 담당자는 “최근에 운전기사에게 교통사고 처리를 넘기는 경우는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특히 경미한 실내안전사고의 경우 운전기사가 피해자와 합의해버리면 이를 적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극단적 선택을 한 버스기사 A씨의 유족들은 조만간 경찰에 정확한 진상 파악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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