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까지 조미화(61)씨는 광주 양림동 ‘선교사 사택’ 바로 옆에 살았다. 수피아여고 앞에서 점빵을 하던 아버지가 지인의 소개로 기독교병원 고허번(카딩턴)원장의 집사로 25년간 일해서다. 이웃인 허철선(허슬리) 목사네 집 포인터는 그녀보다 훨씬 컸다. 그녀의 친구인 파란 눈의, 인형같은 수지를 보려고 친구들이 자주 놀러오곤 했다.
조 씨의 행복했던 양림동 유년시절은 ‘소박한 그림’으로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고 원장 집이나 메리네 집, 아름다웠던 꽃밭 등이 동화같은 그림으로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열리고 있는 ‘선교사의 시간들’전(20일까지)을 통해서다. 전시작들은 1970년대 양림동의 풍경화임과 동시에 10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생활 풍속화’다.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조 씨를 10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건네받은 명함엔 이름과 함께 ‘양림덕(楊林宅), 양림동 뒷동산의 유년시절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나이 든 주민들은 그림 속 건물을 보며 추억을 나누기도 했다. 이번 전시가 의미있는 건 그림과 그녀가 보관중인 사진들을 통해 1960~70년대 양림동 풍경과 인물들의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더 힘든 곳에서 봉사하겠다”며 고 원장이 방글라데시로 떠난 후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이사간 게 1974년이었으니 46년만의 귀향이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뛰놀던 원목사집과 차고가 멋진 전시공간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으로 변모했고, 이 곳에서 전시를 열게 된 게 그녀에게는 꿈같은 일이다.
14살 되던 해 떠난 양림동의 기억은 팍팍했던 서울살이에 늘 등불같은 존재였다. 5년전부터는 블로그에 1970년대 양림동에 대한 기억들을 풀어놓기도 했고, 지난해 10월 부터는 페이스북에 양림동을 소재로 ‘1일 1그림’을 올렸다. 그녀는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지는 않았다. 14인치 노트북 화면을 캔버스 삼아 마우스와 스마트펜으로 ‘기억을 꺼내 일기 써내려가듯’ 그림을 그렸다. 이번 전시에는 디지털 그림과 함께 아크릴화, 수채화 등도 함께 선보이고 있다.
“양림동에 대해 그린다고 생각하니 너무 좋았어요. 옛날 살았던 집을 그려볼까, 아이들과 뛰어놀던 동산을 그려볼까 막 이런 저런 생각이 들어 행복했죠. 지금은 사라진 옛날 건물이 남아있다면 정말 근사한 근대문화유산이 됐을텐데 아쉽기도 했죠. 양림동에 관해서는 그릴 게 너무나 많더군요. 리스트를 뽑아보니 100여개가 넘더라구요.”
지금까지 양림동 시리즈를 70점 정도 그렸고 인터넷에 올리다 보니 저절로 양림동 홍보대사가 됐다.
전시장에 걸린 그림 하나하나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우월순 사택에서 열렸던 파티현장은 14살 소녀의 눈에 신기하기만했다. 당시 기독교병원에서 일하던 오빠 친구와 미국인 간호사의 결혼식 장면을 담은 작품에는 춤추는 ‘코큰 외국인들’의 모습과 한복을 차려입은 그녀의 가족, 너무도 맛있었던 아이스크림과 쿠키 등이 담겼다.
고 원장 집 최고의 요리사였던 옥순이 이모의 모습과 그녀가 만들어준 음식, 고원장집 호두나무에 매달려 있던 외줄 그네, 선교사 묘역에서 내려다본 1970년대 마을 풍경, 선교사 자녀들과 동네친구들과 즐기던 썰매 타기, 사직공원 수영장에서 놀던 모습, 김장하는 날 풍경 등 흥미로운 작품이 많다. 특히 기억을 통해 그려낸 1970년대 양림동 지도가 인상적이다. 전시작 중엔 유난히 ‘수선화’가 많다. 전시장 주변에는 노란 수선화가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어렸을 때 선교사 사택엔 꽃과 나무가 많았어요. 복숭아, 포도밭, 블루베리밭도 있었죠. 학교와 교회에서 늘 꽃 당번이었구요. 봄 되면 제일 먼저 피는 게 수선화죠. 힘든 서울살이에서 봄이 되면 고향 언덕에는 수선화가 피겠구나 언제 가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렸어요.”
전시장 입구에는 당시의 풍경과 그림 속 실존 인물들을 만날 수 있는 사진도 전시돼 있다. 또 병원에서 미국으로 원조 요청을 하던 시절 보냈던 편지에 붙은 세계 우표와 크리스마스실 등 120여장의 우표도 흥미롭다.
조 씨는 지난해말 어비슨 카페에서 양림동 작품으로 작은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 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림 속에도 등장하는 고원장의 막내 아들 루이스와의 40년만의 재회다. 아버지 대를 이어 의대에 진학한 아들에게 할아버지의 흔적을 보여주기 위해 광주를 찾았다 우연히 그림을 본 루이스는 조 씨를 수소문해 만남이 이뤄졌고, 지금도 편지와 사진도 주고 받으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전 프로 작가가 아니예요. 어떤 분들은 너무 예쁘게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이 터치로 계속 그려달라고 하더라구요(웃음). 제가 떠나고 나서 요즘 양림동이 많이 유명해지고 서울에도 많이 알려져 기분이 참 좋습니다. 제 작품이 양림동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조 씨는 앞으로 보유하고 있는 사진과 그림, 자료 등을 활용해 양림동 관련 책도 출간해 보고 싶다고 했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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