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장로 오래된 가게의 재발견] (14)
보청기·휠체어 등 전국 병원에 공급…‘전남 의과기 제작소’로 첫 발
국산 온도계·체온계 개발하기도…공장 폐업 뒤 수출입 사업 전환
오래된 가게가 많은 충장로에서도 전남의료기상사만큼 ‘역사의 산증인’이란 별칭이 어울리는 가게는 또 없을 것이다.
충장로 4가에 있는 전남의료기상사는 광복 이듬해인 지난 1946년 문을 열고, 무려 75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 왔다.
김우평(71) 전남의료기상사 대표는 “1950년 내가 태어났던 ‘탯자리’인 이 가게를 지켜온 것 자체가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이 가게는 광주 시민은 물론 김 대표로서도 꼭 지키고 싶은 특별한 곳이다.
전남의료기상사는 체온계, 보청기, 휠체어 등 다양한 의료기기를 수입해서 관련 업자들에게 공급하는 업체다.
전남의료기상사의 전신은 약방을 운영했던 아버지 김상순씨가 개업한 ‘전남의과기제작소’다. 당시 이곳은 전국에서 2번째로 문을 연 의료기기업체였다. 김 대표는 1991년 아버지가 별세한 뒤 가업을 물려받았다.
“유리 주사기를 직접 제작해 판매하는 걸로 시작했죠. 1950년대부터는 동구 수기동 광주천변에 공장을 짓고 온도계, 습도계, 체온계 등을 만들었습니다. 70년대에 와서는 일본, 미국, 홍콩 등 세계로 수출할 만큼 성장했고, 직원도 120명에 달했지요.”
아버지는 국내 기술로 온도계·체온계 특허를 따는 등 개발·발명에도 힘을 쏟았다. 전국 업계에 소문 날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다. 1952년에는 갓 설립된 전남대 의과대학에 의료기기를 납품했으며, 조선대 병원, 77육군병원, 진해 해군 병원 등과도 납품 계약을 맺었다.
환경오염 등을 문제로 공장이 문을 닫자, 주 사업 영역을 의료기기 수출입으로 전환했다. 김 대표는 서울에서 열리는 트레이드쇼(무역 박람회)를 꾸준히 찾아가 수입상들을 만나고, 세계 각국 회사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수출길을 열어 왔다.
‘의료기기’를 취급하는 가게 특성상 그에 걸맞는 지식도 필요했다. 가게 곳곳을 채우고 있는 의학 서적에는 그의 손때가 잔뜩 묻어 있다. 김 대표는 “새로운 의료기기를 도입하려는 의사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의사보다 빠르게,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어야 그들을 설득하고 사업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긴 세월만큼 사연도 많이 쌓였다. 1968년에는 주변 건물 29채가 불타버린 큰 화재로 가게가 전소됐고, 아버지는 그 여파로 몸져 누워 병원 신세까지 졌다. 김 대표는 형제들과 힘을 모아 가건물을 세우고 사업을 이어갔으며, 10여년이 지난 뒤에야 지금의 건물을 세울 수 있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도 그는 이곳에 있었다. 첫 아이가 막 100일을 넘겼을 때였다. 공수부대가 쳐들어오는 장면부터 함성과 총성이 뒤섞이던 순간들, 시신이 즐비한 도청 앞 참혹한 광경도 지금까지 생생하다.
김 대표는 “평생 광주와 함께 역사를 그려 왔다는 자부심이 가게를 지켜 온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 몸이 건강한 이상 열심히, 성실히 가게를 이어가겠다”며 “좋은 아이템 개발해서 국내에 알리고, 공급하는 것이 목표이자 사명이다”고 말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영상편집=김혜림 기자 fingswoma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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